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간만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다시 꺼내 본다. 늘 마음에 새기기 위해 책상머리 눈에 잘 띄는 책꽂이에 모셔두었는데 너무 오래 외면한 탓인지 종이가 바래고 먼지도 수북하다. 몇 장 들추다 갈피를 접어둔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늘 다시 읽어도 아릿해진다. 이런 게 글이구나 싶다.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독후감은 요즘은 장정일이다, 누구다 하여 널리 성행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지만 원조는 아무래도 김현 님이지 싶다.(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짧게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인데 어찌 이렇게 많은 생각거리를 함축하고 있는지 아득해진다. 1988년 7월 12일과 17일 일기를 짧게 소개한다.

 

7.12

'폭력에서의 도피'라는 제목으로 쓰고 싶은 글 : 아주 심한 폭력은 육체의 자기 방어 본능 때문에, 그 폭력과 관계된 상황에 대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 : 김국태의 어떤 소설(육이오 때 강간당한 어머니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상실증. 그 제목이 뭐더라?), 임철우의 [사산하는 여름] 최윤의 데뷔작. 조금 더 작품을 모아볼 것.

 

7.17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책 여백에 휘갈긴 메모가 '탁견'으로 되어있다. 다시 읽어도 정말 무릎을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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