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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바위 - 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글 물결에 실어 보낸 고향 마을 뒷산 고래바위가 긴 여정 끝에 내 마음의 바다에 닿아 이제 막 깃들려합니다. 처음엔 큰 야심을 품고 바다에 이르러 대왕고래를 만나봐야겠다는 맘이었지만 어느 순간 벼락같이 다가온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낮아지고 작아진 끝에 그예 명개, 작은 티끌만한 크기로 바다에 닿은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아니 고래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머릿돌은 내게 말합니다. 작아져야 한다, 둥글게 바뀌어야 한다, 결국 먼지가 되어 이름 없이 미약한 것이 되어야 비로소 처음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하여 이 동시처럼 술술 읽히는 얇은 책이 말하고 있는 얘기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 아니 내 맘을 그대로 투영한 듯 다가왔던 것입니다. 읽는 내내 그럼 나는 어떤 돌 쯤 될까 하고 헤아려보곤 했습니다. 고래바위 몸통, 분명 아닐 것입니다. 모든 돌들이 선망하는 그런 그릇하곤 거리가 있을 테니까요. 떨어져 나와 산 중턱에 자리 잡았던 너럭바위 같은 넉넉함도 없으니 그도 아닐 듯하고, 결국은 강이 막 시작되는 초입까지 굴러 떨어져 조그마해진, 그러면서도 아직 뾰족한 게 날카로운 습성을 지니고 있는 돌이 딱 제 모습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여전히 결기나 뿜고, 스스로를 늘 과대평가하기만 하는 제가 오버랩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게 작가는, 아니 고래바위 파편은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 강엔 자기처럼
바다를 꿈꾸는 징검돌도 있고,
이른 봄 강둑에 피어난 꽃들의 향기를 따라
바다로 나가는 어린 고기들도 있고,
가을이면 가깝고 먼 바다에서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으러 목숨을 걸고 올라오는
어미 고기들도 있었다.
새로운 삶과 희생이
강과 함께 있었다.(113쪽)
산맥 꼭대기 고래바위 시절의 욕심도,
너럭바위와 뾰족바위 시절의 욕심도,
징검돌과 빨랫돌 시절의 욕심도,
주먹돌과 조약돌, 공깃돌 시절까지도
고래보다 더 크게 자리하고 있던 욕심을
강물에 다 씻어버리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153쪽)
결국은 비우고 낮추고 버리라는 얘기이지요. 늘 작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큰일을 그르치곤 하던, 내 것이라면 움켜지고 목매달아 하던, 그 소아병에서 놓여나 자신을 던지라고 일깨웁니다. 딱 나를 향해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걱정인 것은 지금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맞다, 꼭 뇌리에 새겨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아직 뾰족한 돌이니 어떻게 튈지 통제 불능이니까요. 하지만 고래바위가 전해 준 말의 여운은 남아 있겠지요. 언젠가 다시 욕심이 일어나고 나를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 망설일 때 그때 고래바위가 생각났으면 좋겠습니다. 바다에 닿으려면 희생하고 낮아지고 작아져야만 한다는 전언이 벼락같이 날 일깨우기만 한다면 나도 명개가 되어 그예 바다에 이르고야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