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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잡으면서 약간 경원시하는 마음이랄까, 하여간 비판적 태도부터 앞섰다고 고백해야겠다. 고은 시인이나 [1Q84]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를 밀어내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니 말이다. 과연 노벨상 감인지 궁금해 하며 나름의 잣대로 노벨상 위원회의 안목을 평가해보려는 무모한 생각 때문에 솔직히 마음결이 곱게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리낌은 곧 사라졌다. ‘과연’이 ‘역시’로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재의 장대함과 내용의 깊이, 다양한 실험 등이 녹아있는 그야말로 걸작이라 평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에서 [개구리]의 작가로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하겠다.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는 이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내게 다가온 점은 융합의 미학으로 민중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내용상에 있어서는 신화와 현실이, 형식 측면에서는 서간문, 소설 및 희곡 장르를 아우르고 있었다.
신화와 현실의 융합
[개구리]는 거의 자전소설로 봐도 무방하리만치 작가의 고향인 가오미 둥베이 향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민중들의 삶이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작가의 고모와 얽힌 계획생육, 즉 가족계획사업 정책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리얼리즘적 묘사와 더불어 가끔씩 신화의 영역을 차용하여 흥미를 더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모가 퇴직하던 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고모가 경험한 일들처럼 말이다. 아니 꿈을 꿨을 수도 있겠다. 개구리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얘기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는 고모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계획 생육 정책 수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따른 희생, 이를 주도한 장본인으로서의 미안함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모가 입은 트라우마들이 빚어낸 마음 한구석의 움직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 점토 인형 공예가 두 명의 작품에 투영된 무속적 요소도 환상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고모는 결국 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업무 추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목숨을 앗아간 아이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담기도 하였다. 이처럼 꼼꼼하게 현실을 그리되 현실을 넘어선 환상의 세계를 곁들여 작중 인물들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독자들의 시선을 흡인하고 있다.
소설, 서간문 및 희곡의 융합
[개구리]가 소설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장르적 실험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앞부분에서는 일본 작가, 아마 오에 겐자부로이지 싶은, 와 교환한 서간 형식을 빌어 자신과 고모의 삶과 중국 민중들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소설 중반부부터는 정통 소설 형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희곡 대본을 통해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중국 민중들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 고모가 무대 위에서 목을 매는 장면까지 보여주어 고모의 잠재의식에 드리워 있는 죄의식에 대한 자기 징벌 및 사면의 속죄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설식 서술로 풀어나갔다면 극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었을 대목을 희곡 형식으로 실감나게, 자연스럽게 연출한 것이다.
이처럼 [개구리]는 내용이나 형식 측면에서 다양한 요소와 장르가 융합되어 복잡다기한 인간의 삶을 심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여 작가의 역량을 한껏 드러낸 대표작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