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섬 티오 - 제41회 소학관 문학상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6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티오를 읽고 있으니 섬의 모든 것에 취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톰과 도모코 씨의 심경이 고스란히 읽혀졌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인정 많은 사람들이 늘 살갑게,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챙겨주는 곳이니 굳이 번잡하고 야박한 곳으로 돌아오고 싶겠습니까?

 

주위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큰 물고기를 구워놓았고, 바나나도 넘치게 있었고, 누구에게 받았는지 타로고구마도 있었다. 야자열매는 며칠 전에 내가 열 개쯤 가져다줬는데 세 개 남아 있었다. 아침에 지은 밥도 있었다. 내가 있어서 그랬는지 도모코 씨는 참치 통조림까지 하나 열었다. "날마다 즐거워 죽겠어."(141쪽)

 

그러면서 톰 씨는 덧붙이기를

 

"그런 곳이 있어. 난생처음 왔지만 계속 그곳에 오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땅. 드디어 한 인간으로서 자신과 만나는 땅. 톰한텐 여기가 그런 곳이야. 남쪽 바다, 그 넓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용하고 밝은 섬. 아름다운 바다와 야자나무와 느긋한 사람들, 그리고 그 섬의 친절한 남자아이."(143쪽)

 

인간 본연의 정서가 오롯이 간직되어 있는, 서로를 해치기보다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이웃들, 그런 곳이니 어찌 떠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를 떠나려 한 이도 있기는 했지요. 바로 쿠쿠루이리쿠섬에서 피난 왔던 에밀리오입니다. 티오네 섬보다 더 자연친화적인 삶을 누리던 에밀리오는 태풍에 모든 것을 잃고 친척들과 함께 티오네 섬으로 건너와 3년을 살게 되죠. 그러나 늘 맘 속엔 한결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부 지원에 의지하여 게으르게, 마냥 즐기며 살아가고 있을 따름인데 에밀리오는 이런 나약하고 의미 없는 삶보다 쿠쿠루이리쿠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삶이 더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나무로 카누를 만들고 20여 일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티오와 함께 준비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건강하고 모험적이며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모습, 그게 바로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본연의 정서와 의지가 아닐까요. 그러니 티오와 의기 투합하게 되었고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거죠.

 

나는 티오와 에밀리오의 이별 장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합니다. 에밀리오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마법의 소리를 보여준(들려준) 대목 말입니다. 환타지도 이런 환타지가 없습니다.

 

휘휘 하는 바람소리가 내 마음을 시리고 투명하게 닦아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온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를 통해, 모든 형태와 색과 무게와 움직임이 소리가 되어 귓가에 들려오고, 세계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중략)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몇 날 며칠이고 풀밭에 누워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고, 그저 한순간 모든 것이 무섣보록 응축된 것도 같았다. 소리의 세계는 아름다웠고, 나는 이제 그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냥 누워 있고만 싶었다.(221-223쪽)

 

마냥 누워 세계의 신비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고싶던 티오의 심경이 티오의 섬에 취해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던 톰과 도모코 씨의 그것 아니었을까요.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더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의 어떤 상처도 말끔하게 치유될, 다른 이들을 도무지 미워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따스함과 아름다움과 꿈과 신비를 간직한 멋진 글을 읽고 잠시 아련하게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어찌 한번 통독했다고 덮어만 두겠습니까? 책상머리에 두고 마음결 심란하게 꼬일 때마다 끌어 당겨 한 편씩 아끼며 읽겠습니다. 잠시 공간 이동을 하는 셈이지요. 그러다 어쩜 평생을 함께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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