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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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으레 답사 일정 한 둘쯤은 끼워 넣을 정도로 이제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게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이런 추세에 편승하여 지인들 몇몇과 문화유산 답사 길에 오르곤 했다. 그런데 매번 의아했던 게 남들은 다 알아보는데 왜 내겐 문화유산이 지니고 있는 깊은 맛이, 남다른 의미가 두드러지게 다가오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금세 풀리고 말았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읽자마자 절로 무릎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너무 식상해져버린 유한준 선생의 글“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를 인용한 대목에서 말이다. 알아야 보인다는 얘긴데 까막눈에게 값진 것의 의미가 들어올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내게 몹시도 수치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언젠가 예의 지인들과 경주 답사를 나섰다가 불국사 가는 길에 들른 구정동 삼층석탑 앞에서 나는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도심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석탑을 보니 조형미가 그럴 듯한 게 아름답게 보여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하여 나름대로 안목도 과시할 겸 내 미학적 느낌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더니 지인 한 분이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혀를 차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라고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처음 눈에 들어왔던 것 이상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넌지시 일러주는데 탑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고 상하 비례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석재의 재질과 색깔도 부위마다 다르니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탑의 어설픈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탑이 조잡하게 보였다. 지인은 이 모든 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 탑, 저 탑의 부재들을 조합하여 정체불명의 탑을 인위적으로 급조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 순간 나는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지인이 대단해 보이면서 한편으론 나의 처참한 감식안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기에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나름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던 터에 제대로 한방 먹은 셈이어서 달아오른 얼굴이 한동안 식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만 자기도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읽은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다음 날 바로 서점에 들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 2권을 샀을 밖에.

 

이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인생도처유상수-을 읽고도 한 동안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누질 못했다. 대부분 내가 들렀던 곳인데도 유홍준 교수가 간곡하게 말하는 대목마다 거의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인 전정에 깔린 박석에 관한 부분이 압권이었다. 내가 보기는 봤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보이는 법. 화려한 건축물만 눈에 들어왔지 바닥에 깔린, 그것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게 아니고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박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거기에서 아름다움의 진수를 발견하고 있었다. 경탄을 연발하면서 말이다. 조각보를 잇듯 자연스레 어우러진 박석이 높은 월대와 우람한 건축물, 또 건물 처마의 가녀린 곡선과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학적 가치뿐 아니라 실용적 쓰임새까지 거론할 때는 먹먹할 정도로 울림이 깊었다. 표면이 우툴두툴하여 미끄럼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빛깔도 회색과 잿빛이어서 난반사를 막아 눈부시지 않도록 배려하였으며 이음새를 타고 빗물이 흐르도록 하여 유속을 줄이는 측면까지 짚어내고 있었으니. 인생도처유상수가 따로 없었다. 이런 눈 밝은 이가 상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순천 선암사에 관한 부분에서도 이건 뭐! 하는 감이 들었다. 이 곳 역시 지인들과 선암사에서 송광사 쪽으로 넘어가며 살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금시초문이 태반이었다. 선암사 진입로로 새로 조성된 반듯한 길을 걸어올라 강선루 아래를 지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무지개 아치형의 승선교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오래 되어서 가물가물한가 하고 골똘히 되짚어 봐도 여전히 감감했다. 조금 읽어가다 보니 연유가 선하게 그려졌다. 옛 길을 따라 걸어야 승선교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그래야 다리가 물속에 비친 그림자와 어우러져 둥근 원을 만들고, 다리 아치 사이에 강선루가 들어있는 듯한 절경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왜 그리 허겁지겁 산만 보고 올랐는지 후회막급이랄 밖에. 아름다움의 진면목을 살피고 찾아내려 애써야 했는데 그런 눈을 갖지 못하고 그냥 걷기만 했으니 이런 무지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선암사 경내의 삼인당 연못에 대한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미학적 가치는 별개로 치더라도 홍수 조절을 위한 실용적 기능까지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뭔 이런 조그만 연못을 인공적으로 설치했는가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났다. 깊은 산 속, 깊은 절처럼 내공이 깊어야 뭐든 제대로 보이는 법, 얕디얕은 나의 눈에 그 소중한 것들이 그냥 스쳐지나갔다는 생각을 하니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자책만 하고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깜냥이 그게 다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눈과 귀는, 내면은 활짝 열어두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상수들을 향해 안테나를 맞추고서 말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내 부족한 구석을 메우는 게 결코 흠이 되지는 않을 테니. 주제를 모르고 아등바등 뛰어봤자 남는 건 열등감과 자탄 밖에 없을 것이므로 이제 안분자족하고 상수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전수받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상수들을 길라잡이 삼아 고요히 나아가고자 하는데 문화유산 답사에 관한 한, 그 상수 중의 앞자리는 당연히 유홍준 교수 몫이 될 거라 여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일정을 따라가다 혹 유홍준 교수가 놓친 걸 발견해내는 행운을 내가 누릴지 또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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