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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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실용만이 진리요, 미덕인 이 물신숭배의 시대에 인문학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돌이켜보면 급속한 경제 성장 추진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가치관으로 자리잡으며 이런 경향이 짙어진 것 같다. 시대가 이러니 작은 일에도 심사숙고하며 지혜를 궁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행동방식은 비효율의 극치라 폄하되며 뒷전으로 밀려나게 될밖에. 철학을 포함한 인간의 정신문화를 다루는 분야는 GDP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완전히 논외로 치부되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거의 40여 년 이상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오늘 여기 인문학이 겪고 있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무런 위기 징후도 없다가 어느 순간 우연히 벌어진 게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고 대중들과 유리되게 된 데는 이런 외적 여건 탓도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 종사자들 내부의 체계적 준비 미흡과 적절한 대응 전략 부재도 한 몫 하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을 학자들의 전유물로 여겨 그들만의 암호 같은 체계 하에서 내부 재생산에만 급급해온 것이 그 동안 학계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하니 갈수록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고 급기야 백안시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내부에서 자기 갱신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지적 특권의식에 매몰되어 있었달 밖에. 하여 이런 상황은 인문학계가 자초한 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은 이런 비관적 상황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반성적 성찰과 새로운 모색 요구에 대한 적절한 응답인 듯 보인다. 외면하는 대중들만 탓할게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이쪽에서 먼저 기울여야겠다는 인문학자들의 뒤늦은(?) 깨달음 같다. 의미심장함에만 매몰되어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했던, 그리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그간의 방식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말이다.

 

이 책은 크게 1,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퇴계, 남명, 추사, 다산 및 교산 등 한국 정신사의 지형을 구분한 지적 거두들의 본원을 톺아보며 그들의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살피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소설가 한승원 님이 추사 김정희 선생을 몽중에 만나 대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작가 특유의 분방한 상상력과 한문학에 대한 조예가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만 고답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여러 모로 역량이 얕은 내겐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하여 때론 흔쾌하게 끄덕거려지지 않기도 했다.

2부는 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소프트하게 접근하고 있어 내겐 오히려 1부보다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하겠다. 필자가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회한어린 감성을 피력한 부분도 있고 어릴 적 걸었던 길을 추억하며 아릿하게 떠올려보는 대목도 있어 나의 마음결까지 덩달아 출렁거리는 듯했다. 특히 김도연 작가가 쓴 강릉 가는 먼 길은 추억과 시와 달과 바다가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였다. 김도연 작가의 창작 무대와 생장 배경에 대해서는 [30년 만에 쓰는 반성문]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작가가 어릴 적 노닐었던 대관령 고갯 말랑과 강릉 골목길이 환하게 잡히는 듯 그려지고 거기서 그의 내면이 이렇게 익어갔겠구나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 [길 위의 인문학]은 애초에 의도했던 바를 충분히 이뤘다 하겠다. 고답스런 관념에 갇혀 허공을 맴돌던 인문학을 풀어주어 땅의 온기와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은 듯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인간에 대해, 여유와 관조에 대해 자연스레 숙고하게 될 것 같다.

 

좀 더 바란다면 학자들, 작가들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상상력 충만한 작품만이 아닌 대중들의 투박한 목소리, 현장의 생생한 발언이 조금이나마 가미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작가들과 동행했던 대중사이에 오간 문답을 곁들인다든지 일반인들의 글을 싣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수준은 비록 떨어지겠지만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고민하고 사색한 흔적들, 그리고 그것들의 해결방안을 모색한 의식의 궤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오히려 글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인문학의 결을 더 다양하고 어쩜 깊게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 말미의 실은 노자의 길 얘기도 눈높이를 더 낮춰 범인들도 쉬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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