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자유주의자 고종석의 에세이 소설이다.  본래 소설이란 시사 논평이나 중수필과는 달리 형식 논리적 제약이 덜한 자유로운 장르이다.  이런 특성을 지닌 소설의 형식을 빌어 고종석은 그간 묵히고 삭여 두었던 내면의 소리를 분방하게 발언하고 있다.  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에 실려있는 정신적 지향과 의식의 결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자유주의자는 단연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우호적인 지적, 정서적 경향을 지닌 자이다.  고종석의 글에서도 이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류에서 소외된 주변 계급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가진 자들의 배려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 이번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의 강남 거주자로 명문대를 졸업한 고귀한 신분에다가 조선일보에 기고하여 문화 권력까지 누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 비해 전라도 출신에다가 강북에 거주하며 비명문대 출신의 학벌 때문에 천출로 취급당하고 배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내몰린 이들에 대하여 고종석은 따뜻하고 축축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들을 두둔하고 비호할 수밖에 없는 이성적 근거와 심정적 연민을 간곡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더러는 이런 사회 구조를 혁파해야겠다는 의지도 언뜻언뜻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고종석은 소수자들에게, 또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인 눈길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자칭 자유주의자들의 내면에 깃들어있는 분열적 무의식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집어내고 있다.  자신이 사회적 약자로서 또는 그들에게 우호적 입장에 서 있는 자유주의자이기에 끝까지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동참해야만 할 이들의 한 꺼풀 내면에는 이런 의식을 배반하는 천박한 속물 근성도 잠재해 있음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적 풍토에 휘둘려서인지 주류 기득권층에 합류하여 또 다른 약자들 위에 군림하고픈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신 지역과 가문을 숨기고 싶고 강남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싶으며, 조선일보에 기고하여 사회적 명사의 반열에까지 오르고자 하는 무의식적 갈망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나 금력에 초연해야 할 자유주의자 내지는 그 우호 세력들의 내면에 동물적 욕망이 강렬하게 번들거리고 있음을 짚은 것이다.

고종석은 어쩌면 그동안 발설이 금기시 되어온 자유주의적 지식인의 무의식 세계, 천박한 권력욕으로 점철된 지점을 소설의 형식으로 또렷이 드러내 보여 우리가 진정으로 배격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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