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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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다. 인물의 정체도, 사건의 실상도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 이 가족에게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고 서로 맨얼굴로 대면하며 소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해 보이니 외형만 갖고는 도무지 진단 불가랄 밖에. 공교하게 숨어 가식과 위악의 몸짓으로 다만 관망하고 있을 뿐인 그들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어린 유지의 내면조차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이 가족의 정서적 유대감은 선을 넘어버렸던 것. 하여 읽어내질 못하겠다. 이 가족의 진면목을, 아니 작가의 의도를.

1. 작가 정이현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

전작을 통해 각인된 정이현의 이미지는 시대의 트랜드를 반영하는 쿨한 작가라는 정도였다. 게으름과 무지로 인해 그녀의 진면목을 제대로 접해보고 알아채지 못한 탓이 크겠지만 내 감식안으로는 그런 범주와 위상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너는 모른다> 초반부까지만 해도 예의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아 약간 식상한 감마저 들었다 할까. 스피디한 전개에다 나긋나긋 잘 읽히는 문체가 시종여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어느 순간 갑자기 멈칫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익사 사건의 실마리라곤 조그만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는 와중에 느닷없이 유지의 실종 사건까지 발생하여 스토리 라인이 더욱 난마처럼 꼬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뚜렷한 암시 하나 없이 뚜벅뚜벅 나아가는 게 너무 막막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연찮은 구석이 있으면 우리의 뇌가 겉도는 법. 하여 정말 모르겠다고 되뇌며 간신히 읽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작가가 내미는 손이 얼핏 보였던 것 같다. 그 복잡다단한 일들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정교한 퍼즐의 형태로 슬몃슬몃 건네주고 있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를 조금씩 짜 맞춰 나가다 보니 이럴 수가, 어느새 윤곽이 얼비치는 게 아닌가. 인물들을 한 사람씩 불러내어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는 가운데 그들의 정체도, 그와 관련된 사건의 실상도 서서히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여 빨려들듯 몰입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작가의 손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곳곳에 반전을 예감하는 장치를 절묘하게 숨겨두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시적인 문장으로 따뜻하게 다가오고 있어 어느새 마음으로 다가가 작가의 심경을 고스란히 따라 읽게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이 정도 내공을 지니고 있을지 그동안 정말 까맣게 몰랐다.
 

2. 김상호 가족에 대해 도무지 모르겠다. 

방배동 서래마을 하이밸리 김상호 가족은 겉으론 평온해보이지만 속을 조금만 헤집어 보면 퍼뜩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여있고, 일견 해체 일보 직전까지 이른 것 같기도 하다. 하여 그들 가족에 대해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고 할밖에. 그런데 작가가 인물과 사건별로 하나씩 제시하는 퍼즐을 맞춰나갈수록 이미지가 서서히 그려지며 파편화된 듯 여겨지던 개별적 자아와 그들의 집합인 가족의 실상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할까. 아버지 김상호로부터 배다른 막내 유지에 이르기까지 그들 가족 모두는 자신의 영역 구획을 너무 높게 해버린 극단적 단독자들이었다.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해선 비밀번호 설정 여부도 모를 정도였고 대체 무슨 고민에 빠져 있는지 가늠하지조차 못해 다만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낼 뿐이었다. 

우선 아버지 김상호와 어머니 진옥영. 늘 삐걱대는 이들에게서 정겨운 가족의 모습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지경이라 하겠다. 하여 사설탐정 문영광은 수첩에다가 ‘의뢰인 부부 사이를 파악할 것’이라고 메모할 정도였다.

“무디게 갈린 얼음처럼 식탁 위에는 서걱거리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의 아버지 김상호는 아내 진옥영과 아침 내내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다. 밥을 먹는 김상호의 동작은 사뭇 기계적이었다. 젓가락을 놀려 반찬을 집을 때나 어금니를 그것을 씹을 때도 아내와 자식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무엇엔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그것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너무나 역력해서 도리에 그 자리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잊힐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보였다.”(10-11쪽)

새엄마와 혜성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자분자분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어딜 가는지 얼마 동안 집을 비우는지 피차 밝히지도 묻지도 않았다. 수년에 걸쳐 성립되어 온 일종의 암묵적 규칙이었다.”(12쪽) 

혜성은 겉으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범생이지만 내면에 울화를 늘 억누르고 있다가 결정적으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 차량 방화를 통해 이를 해소하곤 하는 일탈자였다. 또 명문대 의예과에 입학하였지만 학업도 포기하고 말았고. 

은성은 좀 더 심한 경우라 하겠다. 애정 결핍이다 보니 매사에 삐딱이였고 늘 집착할 대상에 몰입하는 가엾은 아이였다. 거쳐 간 이들도 사기꾼에다, 학원 강사 심지어 유지 수사를 맡은 사설탐정 문영광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하나같이 처참한 파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니 사귀던 남자에게서 내가 본 최고의 미친년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밖에. 

유지에 대해선 다들 착하고 얌전한 막내딸로만 여겼지 그 내면에 벌써부터 트라우마가 중첩되어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짱깨의 딸이라 놀림 받고, 초등학교에선 세컨드 소생이라는 소문으로 친구들에게 외면당한 아이였으니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고 지레 짐작해버릴 밖에. 하여 할 말이 있어도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작은 어금니로 그냥 오독오독 깨물어버릴 정도로 삭이곤 했던 것. 그러니 도피기제가 발동하여 실재하는 세계는 허상으로 보고 오히려 가상의 공간, 혼자만의 영역으로 깊이 침잠하고 만 것이다. 그런 선택의 일단이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하울카와 내밀한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진옥영의 연인 밍. 그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국외자, 이방인이었다. 김상호 가족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도 대만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그러면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자발적 고립의 길을 택한 자였다.

이런 하나하나의 모습만 놓고 보면 그들도 한때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 뽀얀 얼굴의 천사였다는 걸 도무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유지의 실종 사건은 이런 김상호 가정의 터닝 포인트였다. 막내의 실종이라는 절박한 현실 앞에 혼자만의 꼬치 속에 똬리 틀고 있던 개별적 자아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숨겨왔던 내면의 그 보드라운 진면목이 슬몃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니 다른 이들도 자신 못지않게 버거운 짐을 부여잡고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으며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간신히 숨기고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과정을 거치며 이제 김상호 가족은 서서히 화해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언젠가는 환자용 침대에 누워 잠든 아이를 들여다보다가 작은 탄성을 뱉어내기도 했다. 얘가 이렇게 예쁜 애였구나.”(484쪽)

마음의 문을 가장 굳게 닫아걸고 있던 은성마저 유지를 보고 이렇게 감격하며 목욕을 시키고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이는 등 정성스레 돌보는 일을 기꺼이 맡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소중한 발견을 위해서는 대가가 없을 수 없는 법. 희생 제물은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 하겠다.

3. 한국 사회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너는 모른다>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말 불가해한 곳이라는 걸 새삼 절감했다. 김상호 가족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아주 특별한 얘기만은 아닐 듯하다. 우리 삶이 온통 천민자본주의 근성으로 물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장기를 밀매하고 경찰력을 대신하여 사설탐정에게 유괴 의심 사건의 해결을 맡길 수 있으며, 불법 도청과 정보 유출이 가능했겠는가? 그건 오로지 돈의 힘이 최고의 권력인 시대니까 공공연히 시도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또 하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과 배제가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모습도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심해도 너무 심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부장이 아내와 아이들 위에 가공할 권력으로 군림하는 모습하며, 다른 민족 구성원에게 이유 없이 가하는 집단적 따돌림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아프게 확인했던 것이다. 특히 화교들이 이 정도로 고통 받고 이처럼 깊은 상처를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늘 의심받으며 어떤 집단에도 선뜻 끼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예외적 존재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오죽하면 밍과 옥영이 남태평양 어디쯤에 섬 하나를 사서 자기들끼리만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을까.

“그들은 단박에 서로의 고향을 알아보았다.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그들의 발음에선 산둥성 악센트와 한국어 악센트가 독특하게 뒤섞여 묻어났다.”(55쪽)

“2008년의 옥영이 창밖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중얼거렸다. 그렇지 한국 여자들만 빼고. 그러네 정말, 그런데 나는? 내가 한국 여잔가? 밍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중국 여자는 아니잖아.”(57쪽)

이렇게 천민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불법, 탈법을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으니 합법적인 시스템에 의한 사건 해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거고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인 화교가 개입된 사건이었으니 해법을 찾기가 오리무중이었다 하겠다. 놀랍고도 안타까운 우리의 참 모습에 진저리칠 밖에.

4. 그리고 삶에 대해 정말 모르겠다.

삶이 왜 그리 어렵고 팍팍한지 모르겠다. 김상호 가족이 하나 같이 까칠하고 서로 부대끼는 것은 그만큼 그들 각자의 삶이 인내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힘겹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러니 이런 약육강식의 살벌한 무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때론 길들여진 사회적 자아, 페르소나의 가면 뒤로 교묘하게 숨고, 더러는 위악을 행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위장하곤 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던 것이리라.

장기 밀매 브로커로 인간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노예상인 아버지, 그의 내면에선 얼마나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겠는가? 페르소나로 두껍게 위장하고 애써 태연한 척 해보지만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 실종되었는데도 두려움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사설탐정에게 의뢰할 정도였으니까. 그 막막함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대부분의 직업인들처럼 그도 자신의 생업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기본적 업무들이 다 법적인 테두리 밖에서 진행되므로 받게 되는 업무 스트레스의 강도가 특히 두드러졌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직업군을 다만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야 한다면 자신이 어디에 속하게 될지 김상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수치스런 행위로 치부당하기에는 억울한 것도 사실이었다.”(279쪽)

위악은 자신에게 닥친 외부의 자극을 어떻게 방어해야 좋을지 모를 때에 행해지는 안쓰러운 폭력이다. 늘 거부당하는 환경 속에서 쩔쩔매다 주눅이 들게 되면, 욕망하는 바를 표출하지 못하고 꾹 눌러 억압해두었다가 엉뚱한 상황에서 낯선 방식으로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은성이 한 때의 연인 스티브가 제 말을 듣지 않는다고 벽거울에 이마를 찧어 피가 흐를 정도로 자신을 학대한 것처럼 말이다. 차량 방화로 스트레스를 풀던 혜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여 억지로 악을 행하는 이들의 내면을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여리디 여린 속살이 오롯 들어차 있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세상은 외면만 보고 미친년이라고, 소년 방화범이라고 금방 낙인찍어버리니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될밖에. 하여 삶은 마냥 고달파지고 타인의 배제는 한층 노골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일 게다. 이 안쓰러운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그건 결국 각자가 스스로를 이겨내어야 할 것인데 그 과정에 외생적 계기가 주어진다면 긍정적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상호 가족의 경우는 유지의 실종이라는 불행이 닥쳐옴으로써 다들 위악의 몸짓을 거두고 본래의 그 선한 얼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생의 비의가 놀랍다.

5. 퍼즐 속 숨은 그림을 발견하다.

작가가 건네준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다 보니 완성된 퍼즐의 배경으로 슬몃 숨은 그림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실눈으로 가늠해보니 그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같이 따뜻하고 반듯한 인간의 품성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 모습이었다. 본연의 뽀얀 얼굴로 서로에게 연민과 위로의 눈짓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다들 이랬구나 하는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걸 모르고 그렇게들 먼길을 돌아왔다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하여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김상호 가족의 순수한 면모를, 아니 이를 고스란히 그려낸 작가 정이현의 심경과 역량을 말이다. 정이현은 얽히고설킨 사건과 관계의 실마리를 퍼즐 조각 하나하나 마다에 담아 이를 긴 호흡으로 일관되게 엮어내어 어느새 선명한 이미지로 살려내었던 것이다. 그 도저한 내공이라니. 그리고 퍼즐의 단순 조합을 넘어 숨은 그림을 깔아두기까지 하였다. 그런 정이현을 따라 가다보니 가면을 쓰고 위악을 일삼던 김상호 가족의 진면목도, 유지 실종과 익사 사건의 실체도 또렷이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따뜻한, 아니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 방식이 비록 서툴고 거칠었으며 때론 위악적인 모습이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제 유지를 다시 찾고 아버지 면회도 다니게 되면서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는데 그들이 갑자기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뽀얀 얼굴의 천사, 방배동 서래마을 하이밸리 김상호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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