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이권우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어떤 부류의 글이건 서평이라면 눈길이 자연스레 가닿고 더러는 책을 읽은 다음 나름의 울림을 직접 남기기도 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 늘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는데 도대체 서평은 어떤 장르에 속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평의 장르적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하다. 이론적 관점을 토대로 본격적인 작품 분석을 시도하는 문학 평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에세이와도 격을 달리하는 독자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학문이나 예술의 분야 혹은 장르가 독립성을 인정받으려면 그것이 다루고자 하는 고유의 대상과 이에 다가가는 체계적인 접근 방법,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이론이나 작품의 축적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서평은 대상이 명확하고 결과물도 많이 축적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독립 장르로의 승격의 관건이라 하겠다.

이권우는 다양한 방법의 글쓰기를 통해 서평의 독자성 확보와 품격 있는 독립 장르로서의 위상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겹쳐 읽기와 깊이 읽기를 통해 펼쳐 보이고 있는 그의 방법론의 모색은 실로 눈부시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재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는 '호밀밭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노래'는 압권이다.

홀든과 선재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통해 책의 내용이나 지향, 작가의 의식 등을 명료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두 책의 소재와 주제에 대한 격조 있는 대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내면세계와 그것의 현실적 좌절 등을 실감나게, 그리하여 안타깝게 그려 보이기도 하고 있다. 정형화된 서평의 틀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파격을 우아하게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란하게 방법론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담겨진 글의 내용도 진지하고 문체도 품격이 있다. 읽다보면 누구나 가슴 서늘해지고 머리 가뿐하게 맑아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이권우가 펼쳐 보이는 서평의 세계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정도의 부수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품적 완결성을 갖고 특유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흡인하는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서평이 독립된 장르의 품격 있는 창작물이 아니란 말인가 반문하고 싶다.

이권우는 그 외에도 원전과 패러디물의 대조를 통해 작가의 의식세계를 드러내 보인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두 가지 변주곡', 페루 여행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다른 장르의 창작물로 표현하여 작품의 소재적 동질성을 숙고해 보게 하는 '꿈꾸는 거대한 상처 잉카로의 여행'이나 거꾸로 읽음으로써 전복적 세계의 원형 탐구를 시도한 '거꾸로 읽으면 제대로 보인다.' 등의 글을 통해 서평에 관한 방법론을 다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가 독자적 장르로서의 서평 문학의 방법론적 모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의미하다 하겠다.

이권우의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새로운 장르로서의 서평의 독립을 염원하는 이들이 이권우의 시험적 작업에 대한 후속 조치로써 나름의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해 내어 책의 세계를 심원하게 탐색해 나가는 가운데, 이들의 연대로 서평문학이라는 독자적인 장르가 점점 또렷한 실체를 갖추며, 만인이 공감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받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서막을 연 이권우의 모험적인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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