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0. (나도 총수님처럼 번호를 매기련다.)  상담 관련 책이나 자료를 읽고 이처럼 후련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쌈박한 기분의 뒤끝을 즐기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유쾌하게 이끌었는지 따져보았는데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우선 기대 이상으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애초 딴지 총수님의 독설로 도배된, 그리하여 마스터베이션 부류가 아닐까 지레짐작하여 약간 꺼려지기도 했는데 웬걸, 전문가 뺨치는 정교한 이론이 빼곡하였던 것이다. 상담 이론의 정수를 꿰고 있는 듯 그의 논리는 종횡무진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것도 있어야 할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복잡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빤히 보이듯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무릎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닐 정도. 또 하나 우리 사회의 넘쳐나는 꼴불견들, 그들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짚어 내더니만 특유의 똥침을 제대로 가해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뒷골 뻐근해지도록 불편한 심사가 일어나 왜일까 한참을 멈칫거리게도 만들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연유가 환하게 그려졌다. 총수님이 쏘아붙이고 있는 비열하고 저급하며 유아틱한 모습이 다름 아닌 나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1. (우선 유쾌 상쾌 통쾌한 부분부터)  <건투를 빈다>에 등장하는 상담자의 모습은 스테레오타입화 되어 있는 총수님의 이미지와 잘 겹쳐지지 않는다. 능글능글하게 징그러운 면모는 간데없고 풋풋하며 더욱이 착하기까지 하다. 물론 도덕군자의 반듯한 행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순일무잡의 지경을 보여주었단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잡스런 사설 없이 또렷하게 인간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지적으로 충만한 총수님의 역량 때문이라 하겠다. 그간에 이루어진 상담은 대부분이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다음 피상담자를 위로하여 그 일을 덮어버리려는 무마 위주의 것이었다. 하여 알맹이 없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어서 기껏 이런 말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는가 하고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총수님은 역시 달랐다. 총수님이 이런 상담 코너를 운영하게 된 것도 형식적인 위로 위주의 상담에 질렸기 때문이라 한다. 하여 총수님은 문제의 근원과 해결방법에 대해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직관력과 이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배경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지적 토대 위에 본인의 다양한 경험까지 축적되어 있으니 상담 내용이 알차고 지혜로운 것이 될밖에. 하여 <건투를 빈다>는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멋진 심리학 임상 실험서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지적인 성감대를 자극하며 두드러진 의미로 다가온 몇 가지를 들어본다. 우선 자신은 자기 선택의 누적분이라는 것. 그간의 선택 결과가 쌓여서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선택의 중요성과 그 파급 효과의 지속성에 대해 이보다 더 실감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대목에서도 고개를 끄덕일밖에. 어머니가 바라고 있는 것을 자신도 바란다는 사실은 그렇게 길들여져 별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인데 그 심리적 실체를 또렷이 알고 나니 뜨악해졌다 할까. 게다가 에고, 지적 허영 및 자기 객관화 등 우리가 평소 놓치고 있던 것들의 진면목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해주고 있다. 하여 가히 지적 향연을 즐겼다고 할만하다. 심지어 사회의 권력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지혜까지도 담고 있어 효용이 너무나 컸다 할까. 헤어지자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연인에 목매달아 하는 이를 향해 “모든 관계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다. 그녀는 그 점을 체득하고 있다. 그 한마디가 그녀에게 관계의 헤게모니를 쥐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단 말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이별에 대한 당신의 공포를 이용해 관계의 우위에 서는 법을 안다는 말이다.”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단호하게 일러주는 상담자를 보았느냐 말이다. 

그런데 김어준의 상담 내용이 더욱 각별하게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그의 심성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어 절로 감정이입이 되게끔 몰고 가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에 대한 신뢰를 피력한 부분에서는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진지하고 결곡한 유전 형질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인간의 자기 정화 및 치유 능력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었기에 상담자의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개입 없이 피상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끔 자연스레 도와주는 방식으로 상담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어설픈 도덕군자의 윤리적 판단을 삼가고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려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어 더욱 빨려들 밖에. 

또 하나 즐거운 점은 싸가지들을 후련하게 질타하여 대리만족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 대목. 명품족이나 삐끼족 등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칙사 대접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싸가지들에게 김어준은 일갈하고 있다.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 싸고 있다고 질타하며 상대방에게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제삼자인 나까지 후련하게 말이다. 이런 상담이 다 있다니. 

2. (이제 뒷골 뻐근해지도록 불편한 얘기) 그런데 갈수록 후련함을 즐길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에 심사가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총수님이 그렇게 퍼붓고 있는 대상이 바로 나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먼저 남의 시선 의식하기, 곰곰 돌이켜보니 그간 내 삶을 산 게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만들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오로지 남에게 나쁜 놈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 대목에서 요즘 회자되고 있는 난(NAN)방송 안상태 기자의 리포트가 떠올랐다. “난 엄마뿐이고, 엄마는 내 인생 틀어쥐고 있고, 난 내 맘대로 선택해 본 적이 없이 엄마가 닦아 놓은 길만 갔을 뿐이고...” 그 푸념을 듣고 뒤로 넘어가면서도 저건 딱 내 얘긴데 하고 뜨끔했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났던 것이다. 물론 인류사 자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단 욕구에 의해 구동되어 온 인정 투쟁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겠단 욕심을 버리면 나만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 환히 열릴 것인데. 

또 반드시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유아적 본능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김어준은 삶의 선택에는 리스크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는 점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공짜가 없다는 진리를 말이다. 그동안 나의 선택이나 행동은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응석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약자와 피해자인 척 하면서 위로와 동정을 유발하여 상황을 모면하려던 자가 다름 아닌 나였던 것이다. 

방어기제의 화신인 나의 일그러진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맘에 드는 모습만 기억하며 그렇지 않은 면은 외면하고 부정해버리곤 했기에 때론 남들은 다 아는 명백히 나쁜 나의 면모도 까맣게 잊곤 했다는 것을 총수님의 글을 통해 절감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그러는 줄 모르고 살아온 그 무명의 나날들을 생각하면 뒷덜미가 뻐근할밖에. 

3. (그럼 결국은)  김어준의 상담 기록을 보고 다잡아먹은 마음이 있다. 그냥 생겨 먹은 대로 살자고 말이다. 물론 이는 엄청난 용기와 투쟁이 필요한 일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자신의 못난 면마저 그대로 받아들여 더 이상 뚜껑 열리지 않는 단계, 쓸데없는 자기비하나 턱없는 과대평가 없이 그저 나름의 삶의 기준을 정립하여 삶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장악하고 자존감을 향유하는, 그런 지존의 경지에 오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은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투를 빈다>에서 그런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완벽한 즉답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 부분 지침으로 삼을만한 소중한 지혜를 제공해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4. (사족)  그리고 그 동안 의아했던 것 하나의 실마리를 풀었음도 고백한다. 내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데 왜 아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일까 하고 질투 반 의문 반 연구 대상이었는데 <건투를 빈다>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아내의 예리한 지성과 넉넉한 심성이 누구나 자신의 속내를 오롯이 드러내며 하소연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김어준은 지성을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기 객관화 능력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지닌 자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만이 내뿜는 자존감의 괴력을 발휘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그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아내는 그러했다. 지성의 아우라가 어려 있었기에 사람들이 자연스레 주위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의 심정을 자신의 그것으로 느낄 줄 아는 가슴까지 지녔기에 연민의 공감이랄까 타인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아내의 영향력 범위 안으로 들어와 더불어 위로받고 위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밖에. 물론 이는 나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빈 구석. 하지만 어쩌랴. 인위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을.
하여 <건투를 빈다>를 통해 아내의 사랑받는 비결을, 또 내게 결여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또렷이 알게 해 준 총수님께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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