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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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파문이 인다. 어딘가에 마음이 닿는다. 그 곳은 저 반대편 극지(極地) 페루 해변이기도 하고 우리 안에 아직 퇴화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예술혼의 존재 영역 같기도 하며, 순응주의에 물들지 않은 인간 본연의 결기로 충만한 지점이기도 하고, 애써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동물적 본능, 그 차디찬 비정함의 세계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의 글은 우리 마음이 가 닿기를 의식적으로 꺼리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늘 동경하고 있었거나 부채로 여겼던 곳으로 평온한 일상을 흔들며 몰고 간다. 거기에서 실체가 모호했던 우리의 마음, 인간의 본연을 또렷이 읽을 수 있게 된다.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아려오게 한다. '그것들은 결국 이런 모습들이었단 말인가.' 하는 자탄과 회한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스라이 어릴 적 순수가, 인간 본연의 소박하고 따스한 모습이 그립게도 떠오른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통해 우리를 마음의 오지(奧地), 인간의 극지로 내몰아서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면의 그늘진 곳까지 가리지 않고 드러내어 의식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파악하게 해 준, 나의 나됨을, 인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탐사하게 해 준 스승 로맹 가리의 혜안에 경탄과 함께 머리 숙이게 된다. 이제 사숙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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