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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Panopticon)을 권력의 감시를 죄수가 내면화하게 됨에 따라 실제적 감시 없이도 그의 영혼까지 규율할 수 있는 자동 기계로 보았다. 간수만이 죄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는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착안된 파놉티콘이 죄수들에게 늘 감시당하고 모든 행태가 노출되고 있다는 의식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하여 규율에 순응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 한다는 것이다.
비록 벤담이 제기한 파놉티콘은 실현되지 않고 의미도 퇴색되어 버렸지만 푸코에 의해 부활하여 다시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의 정보 사회가 다양한 감시 통제 방법으로 개인의-죄수가 아닌 일반인들까지도 포함하여- 정보를 부당하게 수집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상황, 곧 정보 감옥으로 화하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면서 파놉티콘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의 감시자 빅 브라더를 연상하면서 말이다.
홍성욱은 여기서 파놉티콘에 근거한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적 측면에만 비관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전자 매체가 지닌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즉 전자 정보 매체가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역으로 시민 사회 측에서 감시 주체들을 역감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그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홍성욱은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감시의 시선과 역감시의 저항적 눈길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시놉티콘(Synopticon)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 운동 단체들의 다양한 역감시 사례들이 이미 그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시의 시선에 비해 역감시의 수단은 법적, 기술적 제약에 의해 아직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시놉티콘이 이루어져 빅 브라더를 역감시할 수 있으려면 시민 사회의 역량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측면과 관련하여 시놉티콘의 성패는 사회 세력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역학 관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역감시를 주도할 시민 운동 단체의 활성화와 이를 뒷받침할 시민 의식의 성숙 및 시민 운동의 합법적 보장을 위한 제도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홍성욱은 구체적으로 NGO들의 권력, 기업 및 언론 등에 대한 감시와 정보 독점 통제 반대 운동 전개 등과 더불어 프라이버시법 제정과 정보 공개권의 확대 요구 등이 파놉티콘을 역감시의 기제로 무력화시키고 시놉티콘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고있다.
이처럼 정보 사회에서의 정보 통제와 프라이버시 침해 등을 우려하여 비관적인 정보 감옥만을 연상하고 있는 우리의 암울한 시선을 오히려 역감시를 통한 주권 확보의 기회로 파악하여 시놉티콘의 가능성을 제기한 홍성욱의 탁월한 안목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그가 권고한 역감시 주체들의 세력 결집과 그들의 체계적인 운동 필요성에도 공감하며 가능한한 동참하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