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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오지 - 이문재 시집
이문재 / 문학동네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산업 사회의 때가 아직 묻지 않은 라다크인들의 삶의 방식을 참여 관찰의 형식으로 보고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리고 있는 것이 주종 산업으로서의 농업의 소중함과 이를 영위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아름다운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농업 공동체적 삶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보편적 생활 양식인데 이것이 작금의 인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구성해 나가는 지향점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문재의 시집『마음의 오지』는 이러한 『오래된 미래』에서 지향하고 있는 생각을 감성적 측면에서 잘 승화시킨 명편들을 모은 시집이다. 일독을 권한다.
마음의 오지란 무엇일까? 이문재의 시를 읽다 보면 그것은 결국 물질적 삶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산업 사회의 틀을 벗어난 불편하면서도 인간의 본연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 상태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오지로 우리의 의식과 감성을 내몰아 이 얼룩진 시대 - 이문재 식으로 말하자면 되새떼가 창궐하고 왜가리가 횡행하는, 자본주의적 집착에 얽매어 있는 우리의 자화상 - 의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오지의 표상이 곧 농업이라는 산업과 농경 공동체적 사고 방식임을 이문재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이미 박물관 신세를 지며 과거를 추억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농업 공동체적 심성을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 재현, 강화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이다. 이문재는 그 방식을 길거리에 떨어져 나부끼는 낙엽을 보도 블록을 들추고 넣어주면서 장례를 생각한다든지 또 알몸으로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바위에 누워 있는다든지 작은 자연의 변화에도 들떠 노래하는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모습과 생각들이 미미하지만 메마른 자본주의적 삶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우리의 어지러운 삶의 실마리를 제대로 된 결로 되살려 놓을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오래된 미래인 농업 공동체적 삶의 모습과 그러한 의식과 과학적 지향을 감성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런 생활 양식의 내면화에 동참하라고 설득하고 있는 이문재의 빼어난 시집 『마음의 오지』를 읽으며 잔잔한 기쁨, 마음의 평안을 누려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