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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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원래 비판자이다. 품격 있는 분별력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수준 미달의 개인이나 세련되게 제도화되어있지 못한 집단의 거친 면들은 유난히 부각되어 보일 것이고 생리적으로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까지 관심을 갖고 참견하려는 '먹물'의 속성상 이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기능적으로만 볼 때 이런 비판적 지식인은 시대의 길눈이요 역사의 좌표 역할을 수행하는 막중한 직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고결한 책무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도덕적 수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비판의 시각이 타인이나 이질적인 집단을 향할 때는 그지없이 단호하고 준엄하게 가 닿다가도 정작 자신의 내면이나 자기와 관련된 집단의 어두움에 대해서는 눈감기 일쑤다. 한정적인 지적 색맹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규항의 시선은 깨끗하고 곧다. 잡스런 이해 관계가 개입됨이 없이 모든 이들에게 공정하게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 책임의 무게를 형평성 있게 따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청소년, 폭주족, 동성애자 및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용적 눈길로 따뜻이 감싸다가도 주류 기득권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잣대로 그들의 의식과 행태를 재단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 세력을 재단하는 척도보다 더 정밀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통렬하게 질타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그의 우군이자 동지요 형제라 할 수 있는 지식인들, 운동권 및 사회개혁가들에 대해서이다. 그들, 김규항이 동질감을 느꼈거나 느끼고 있는 내집단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해 맹렬한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들 가운데 시대의 첨단이자 전위로 자처했던 지도적 인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가차가 없다. '조개구이'와 '달콤 쌉쌀한 초콜릿'에서는 전향한 박노해의 행태에 대해 우회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폄하하며 충고까지 곁들이고 있다.

한때 노동 해방의 기수요, 사노맹의 리더로서 사회주의자임을 당당하게 공표하던 그의 변절과 일탈에 대해 비판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가 존경한다는 선배인 홍세화가 전도하고 있는 똘레랑스에 대해서도 반역자나 극우 반동 세력의 과오에 대해서까지 눈감고 넘어가자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뼈아픈 권고를 하고 있다. 또 가상 현실 게임의 몽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도량이 좁고 장진구와 같은 속물 근성에 절어 있는 기괴한 모습의 이 시대 좌파 지식인들에 대해 허위 의식을 버리라고 공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김규항의 내부를 향한 비판의 시선이 경박하거나 공허하지 않고 힘이 실려있으며 울림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질타의 토대가 준엄한 자아비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좌파 같잖은 좌파, 곧 초보이자 B급으로 여기고 있으며 수시로 신념에 철저하지 못했다며 자괴감에 휩싸이고 또 그러한 심정과 정신의 부끄러운 편력을 가감없이 드러내기까지 하는 겸손과 솔직함이 그러한 권위를 낳게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리나 김규항의 시선은 늘 젖어 있다. 애정과 온기로 축축하며 재건과 연대의 뜨거운 소망을 담고 있다. 통렬하되 파탄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돌아오기를, 그리하여 다시 구축하기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는 것이다. 김규항이 바라보는 우파는 이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현재 이익 유지에 골몰하고 있는 집단의 자기 방어 논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이 사회의 건전한 유지와 진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직 좌파들의 고결한 이념적 헌신만이 이를 가능케 할 뿐임을 김규항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들 좌파들에게서 희망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연민이 묻어있는 비판과 질타의 준엄한 시선으로 다시금 분발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을 해방하고 사회를 진보시키고자 하는 이상을 지닌 좌파로서의 심성과 지성의 충실한 전범, 진정한 좌파 김규항의 시선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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