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감어수 감어인'이라 했던가. 홍세화라는 거울에 비춰본 나와 우리 사회의 모습은 한마디로 일그러진 괴형이었다. 그런데 이런 한심한 모습을 왜 진작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홍세화와 같은 맑고 고결한 영혼을 접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토양에서 그동안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하여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며 까닭없이 남을 증오하고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살아온 삶이었기에 그러할까. 이러한 의문이 들게끔 아직도 때묻지 않은 신선한 정신세계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그의 글에 흠뻑 취해 모처럼 나와 우리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는 다소 격정적으로 그의 시련의 나날들을 그려 공감을 불러일으키더니 이번 글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는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차분하게 격조있는 논평을 하고있다.

특히 프랑스와 비교되는 조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한 부분이 많았는데 내부자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대한 사안들을 예의 그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엄밀하게 짚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일이기에 더 따갑게 그리고 애정이 듬뿍담긴 따뜻한 충고를 하고있다.

특히 교직자인 나로서는 프랑스의 교육정책이나 관행과 대비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지적한 부분에서 너무나 참담함을 느꼈다. 또 세대간 연대의 차원에서 정년 단축을 주장한 노조의 이야기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 뜨거움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전편에 이은 예의 똘레랑스 이야기도 의미심장하였다. 자크 아탈리가 지은 <21세기 사전>에 의하면 21세기는 유목의 시대로 박애가 최고의 가치가 될 것이라 하였다. 박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똘레랑스가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자 행동양식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삶의 방식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똘레랑스를 베풀어야만 하리라. 따라서 프랑스인 뿐만 아니고 온 인류가 똘레랑스를 의식하고 내면화하여야 유목의 세기인 미래 사회에서 마찰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똘레랑스의 방향에 대해서도 잘 지적하였다. 똘레랑스는 하향식이어야 할 것이다. 나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아이들에게 나의 부족한 면을 너희가 참고 견디라고 강요해 왔던것 같은데 사실은 내가 아이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나는 많은 조건을 구비한 여유있는 상태이기에 말이다.

홍세화의 이런 간곡한 생각들,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들이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고결한 정신 세계 아니 인간 본연의 숭고한 의식이 이제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북에서 남으로 한반도까지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하며 이런 기대감을 갖도록 해준 좋은 글, 즐거운 책읽기을 선사한 홍세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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