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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목격했다는 게 말이나 돼요?”(276쪽)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마음이 뇌에 신호를 보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게끔 명령하도록 부추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신경은 유사한 것만 봐도 실제 그것인양 여겨버리는 것이다. 하여 인간의 눈에 잡힌 외계의 영상은 내면의 반영이기 일쑤다.
연전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황우석 박사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사건이 생각난다. 그것은 과학 선진국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사회적 당위와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 가족들의 절절한 염원이 낳은 신화였다. 그러기에 학계의 검증 결과 허위로 판명되었음에도 진실인 양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물론 문제를 제기한 측을 폄훼하며 몰아붙이는 비이성적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던 세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결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불거져 정권의 안위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값싸고 질 좋으며 안전하기까지 하니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내심으로도 철석 같이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들의 눈에도 바라는 것만 보일뿐이다. 우리 사회 집단 무의식의 현주소를 또렷이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하겠다.
이런 비이성적인 행태가 횡행하는 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공허감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물질적 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은 아직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이런 부조화 때문에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뭔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권위 같은 데 기대어 빈 구석을 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의 발로가 이런 방식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무중력 증후군>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유사한 심리적 증후군을 앓고 있다. 특히 노시보에게는 한결 더 증폭되어 나타난다. 그리하여 무중력 증후군이라고 명명된 질환 보유자의 모델로 꼽히게 된다. 그것은 앞에서 든 사회적 상황에다가 개인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통제 불능의 지경으로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반쪽이던 미라가 떠난 일이 뒤숭숭하고 불안정한 집단 문화와 겹쳐지며 전형적인 무기력하고 공허한 증상을 보인 것이다. 그 상실과 소외로 얼룩진 마음의 결이 뇌로 아니 온몸으로 전이되어 나타난 것이다.
“미라가 떠난 후 찍었던 가슴 사진과 오늘 새로 찍은 가슴 사진이다. 새로운 가슴 사진과 그 이전 것을 비교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새로운 가슴 사진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었다.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떠도 마찬가지였다. 폴라로이드에서 갓 뽑아낸 사진처럼 허공에 대고 몇 번을 흔들어도 똑 같았다. 가슴 속에는 하얀 원형의 이미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은 달이었다.”(290쪽)
달의 증식과 이로 인한 무중력 증후군의 만연, 연이은 사회적 일탈은 집단 무의식과 개인적인 상처가 빚은 비현실적 병리 현상이었다. 실연의 상처가 가슴에 뻥 뚫린 달처럼 하늘에도 달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 개의 달이 뜨고 무중력 증후군이 발병한 것은 결국 상실과 소외로 말미암은 공허를 매우기 위해 과도하게 다른 보상 대상에게 집착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겠다. 가슴이 머리로 하여금 초월적 상상물을 낳게 한 것이다.
“가슴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애매했다. 다만 인터넷 한구석에서 ‘붕대로 가슴을 꽁꽁 싸매는 방법’을 찾아냈다.”(288)
주인공의 이런 고백은 바로 우리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 척박한 현실, 부대끼는 심경으로 어찌 상처 없이 이 시대를 견디겠는가 말이다. 하여 작가는 노시보의 경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과 우리의 심리적 징후를 이런 엽기적인 상상으로 그려내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