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 한 소심한 수다쟁이의 동유럽 꼼꼼 유랑기
이정흠 지음 / 즐거운상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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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님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있네' 라는 구절처럼 나도 그렇게 무념무상 길을 나섰으면 하고 아직도 꿈꾼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느리게 음미하듯 걷고 있노라면 그곳이 어디든 바로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득해지기도 합니다. 한동안 걸으면 문득 세상 시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과만 대면할 수 있게 됩니다. 혼란스런 마음결 추스르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맛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곳은 인적이 드물면서도 문화의 향기가 유장하게 감도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정흠 님이 동유럽의 뒷골목을 걷고자 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저도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행은 원래 새로 접하게 되는 풍경이나 주변의 사회적 상황을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지극히 사적으로 해석하기 일쑤인 개인적 체험의 과정이지요. 이를 통해 한 개체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자각하기도 하고 때론 약삭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도 하고요. 동유럽의 뒷골목을 걸으며 이정흠 님이 건져 올린 소중한 깨달음도 이에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체코 프라하 페트르진 전망대에서 거짓말로 할인받은 딱 그 금액만큼을 소금과 후추 값으로 지불하고 나서 페트르진의 저주를 느껴던 대목에서 약간 우스우면서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거기다가 여행자의 뒤통수를 치는 자 저주 받으리라! 라고 악담을 퍼붓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일순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입장료가 4,500원밖에 하지 않아 돈에 의한, 돈을 위해 존재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이라는 자각이 들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고, 또 카를교의 생동감 넘치는 문화를 향유하고 위로를 받으니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날아갔다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설핏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나 미학적이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행의 불예측성이 선사했던 외로움과 우울함이 또 다른 불예측성이 가져다준 우연에 의해 해결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세상만사가 계산대로만 되지 않는 것임을, 또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음을 냉엄하게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창한 얘기는 아니지만 잔잔하게 다가와 공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같이 동유럽 뒷골목을 걷고프게 만듭니다.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는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에 대한 감상적인 기록이지만 가식 없이 전해지는 인간적인 모습에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각만해도 가슴 한 켠이 싸아해지곤 하는 동유럽, 그 빛나는 문화와 숨겨진 매력으로 빼곡한 곳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따뜻하게 다가가 구석구석 그 진면목으로 이끌고 있는 이정흠 님. 그가 걸었던 여정을 따라 동유럽의 뒷골목을 나도 음미하며 걸어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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