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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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과 보라, 세상을 향한 적대의식으로 똘똘 뭉쳐 반항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결코 남에게 곁을 내주지 않던 아이. 존중받아 본 적이 없기에 스스로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내팽개쳤던 아이. 그러기에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무궁무진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지 그리하여 얼마나 벅찬 일을 이뤄낼 수 있는 존재인지 도무지 생각조차 않던 아이들이었죠. 그러니 남에 대한 배려는 애초 기대하기 어려울 밖에요. 줄줄이 엮이는 일련의 사고들, 그런데 그것들이 실은 나를 알아달라는 외침이라는 것을 본인들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니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편적인 삶의 궤적에서 한참이나 일탈한 속칭 문제아들로 보이게 된 거죠. 하지만 문제아라는 말처럼 의미가 모호한 게 또 없을 것입니다. 다들 자기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이지요. 다른 아이를 때려서 구치소에 간 소녀나 왕따를 당해 그 괴로움을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풀던 소녀에게도 곡절과 이유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걷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과도할 정도로요. 별다른 장비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특별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곤 한답니다. 그러면서 걷기란 세계와 홀로 마주서는 일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습니다. 원시적이리만치 인간 본연의 방식으로 지구를 온몸, 아니 두발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걷기에 몰입할 때마다 더욱 나만의 세계로 오롯이 나아가기에 적합한 곳은 없을까 자주 생각하곤 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 사막이나 무인도가 그러할 것이라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드넓은 무인도 안에 있는 사막을 기진할 정도로 걷는 일이 되겠지요.

맺힌 응어리를 푸는 데는 걷기만한 것이 또 없을 것입니다. 오래 걷다보면 쌓였던 잡다한 것들이 걸러져 마음결이 문득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고비를 넘기면 생의 한 구비를 정리할 수 있으리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길을 나섭니다. 그것도 바로 내가 꿈꿔왔던 사막에 가려하고 있습니다.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나드는 악조건 투성이인 곳으로 말입니다. 검찰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청소년 재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두 명의 문제아 소녀와 30대 미주 언니가 함께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오르게 된 것입니다. 총 1,200킬로미터의 길을 70일 간에 걸쳐 오로지 맨몸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내가 꿈꿔왔던 그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여정을, 그들의 마음결을 따라 가다보니 나의 진솔한 내면의 일단, 혹은 걷기에 집착하고 있는 무의식의 근원이 읽혀지는 게 아닙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화해의 방식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내 의식을 짓누르고 있던 응어리를 모른 채 부여안고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풀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많은데 어찌 할 바는 모르겠고 하여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내 몸이, 아니 내 발이 그런 내 마음을 먼저 읽고 나를 걷기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은성과 보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에 반항하는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미웠을 겁니다. 이를 풀고 세상과 더불어 가고자 하는 마음이 길을 나서게 이끌었고 또 힘겨운 고비들도 너끈히 견뎌낼 수 있게 했던 힘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런 무의식이 일행, 특히 미주 언니에 대한 적대감을 거둔 모습과 보라에 대한 배려의 형태로 고스란히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성과 보라의 실크로드 여정, 아니 내면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의 그것도 추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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