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유독 끌리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꽃 같은 식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것은 실제적인 뚜렷한 이유에서라기보다 관념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접하거나 오래도록 살펴본 다음 내린 결론이 아니라 이름에 혹하거나 자신만이 간직한 이미지나 옛 추억이 오버랩되며 형성된 고정관념에 의하여 그에 대한 애착을 보이기 일쑤인 것입니다.

 나는 꽃 중에서 특히 목련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목련은 지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됩니다. 볼품 없이 오래도록 매달려 있다가 뒤틀리며 바래져 그 희디희던 꽃잎이 흑갈색이 되고서야 비로소 한살이를 마감하는 것이지요. 마침 그때 봄비라도 내린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한 말로를 고스란히 드러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달리 목련하면 아릿한 이미지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참혹한 시절을 뚫고 헐벗고 메마른 가지에서 잎도 없이 둥실 큰 연꽃을 피워 올리다니, 그 신비함이란. 목련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김광석 님이 부른 '회귀'라는 노래 때문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시를 노래한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아득함은 한동안 마음결을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목련은 피어 흰 빛만 하늘로 오르고

 ......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만 뒤에 남기고,
 긴 기다림만 여기 남기고..."

 하여 그런 신비하고 아릿한 관념이 나의 뇌리에 붙박여있기에 추한 뒷끝과는 상관없이 꽃이라 하면 목련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 동화>에 등장하는 꽃 가운데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라일락과 로즈마리가 먼저 두드러지게 다가왔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보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름에의 끌림이랄까, 신비로운 이국적 이미지에 혹했다할까 하여간 매우 강한 흡인력을 갖고있는 꽃입니다. 물론 나에게만 그렇겠지요. 그래서 글을 먼저 읽고 라일락과 로즈마리 편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 꽃들을 좋아하기에 관련되는 글을 찾아 읽었던 것입니다. 예의 그 고정관념 발동된 것이지요.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식물 동화>는 가볍게 치부해버릴, 그렇고 그런 만만한 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들에 대해 정감 있게, 때론 환타지 같이 신비롭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쏙 빨려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야기 구성도 치밀하고 문체도 개성적이어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식물의 약이나 음식으로서의 효능이란 실용적인 면을 얘기하고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어 사건이나 스토리 전개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상황에 딱 적합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라일락 편에서는 주로 약효에 대해 그렸는데, 이야기 속에 약재의 성질을 잘 버무려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폭포(소변)가 멈춘 왕의 샘물을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뿌리를 다려 먹였다든지, 왕의 떨어진 입맛을 돋우려고 라일락꽃을 반죽하여 빵을 구워 살려낸 것은 물론 공주님이 조용한 장소(화장실)에 오래 앉아있게 되자 열매를 달여 먹여 공주님의 사랑을 얻고 이에 놀란 임금님의 목에 걸린 기쁨을 껍질을 달여 먹여 튀어나오게 하여 왕과 공주를 구하고 드디어 왕위에까지 오르는 스토리 라인으로 라일락의 효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주인공 목동이 온 백성들에게 그런 기적을 낳은 싹을 골고루 나눠주어 집집마다 라일락이 한 그루씩 서 있게된 유래가 되었다고 끝맺음을 하여 완벽하게 아우러진 한편의 해피엔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로즈마리는 효능보다 꽃을 피우는 기나긴 과정을 줄거리로 하여 꽃의 성질을 이야기 속에 담고 있습니다. 힘 자랑만 하는 가시나무, 덧없는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장미와 함께 있던 로즈마리는 마리아와 요셉을 태운 나귀가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말할 수 없이 좋은데다 맛도 그만이고 해충도 쫓아주는 면을 지닌 것을 알아보고 찾아오자 제 그늘 아래 푹 쉬게 합니다. 이때 마리아와 요셉을 둘러싼 대기에 말할 수 없는 충만이 가득한 것을 로즈마리는 보게 되지요. 로즈마리 그늘을 떠나 길을 나서 마구간 구유에서 아기 예수님을 막 낳으려는 순간 외딴 길가 헐벗은 덤불에서 잎만 달고 별 주목도 못 받던 로즈마리가 비로소 하늘처럼 푸른 꽃을 피우게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애틋하고 때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냥 관념으로만 사랑하고 있던 꽃들에 대해 더욱 애착이 가고 더불어 그 실용적 쓰임새가 고맙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여 <식물 동화>는 요즘 새로 대두되고 있는 대체의학 차원의 자연 치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동화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순진무구한 아이들까지 더러는 환타지물의 신비로운 세계에 푹 빠져있는 매니아들에게까지 살갑게, 또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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