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의 성지 광주!
그러나 그 현장은 민주화를 위한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이 아니다. 삶을 지키고자, 억울함을 나누고자 함께 모여 외치다. 피를 흘리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형제가, 동료가 쓰러지는 현장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슬픔의 현장이 현재는 민주화의 현장으로 세워졌다.
광주는 아픔을 안고 40년을 보냈다. 정확한 5.18의 주범을 알지 못한채 40년이라는 세월을 눈물과 함께 보냈다.
저자는 친구에게 5.18의 현장을 듣게 되었다. 5.18의 현장을 전해 들었던 저자는 수십년동안 친구의 5.18를 자신의 5.18로 품고 살아왔다. 20년 전에 낙향을 하면서 광주에 대한 빚짐을 소설로 갚고자 했다. 그러나 갚을 수 없는 5.18의 현장은 역사의 한 축이 되었다.
저자는 80년 5월 18일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배경들을 소설에 담았다. 5월 18일의 그날을 그리면서 저자는 5월 14일부터 써내려 갔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가득한 현장에 저자는 내려갔다. 광주의 냄새가 가득한 양동시장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살아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평화롭고 인간 냄새가 가득한 광주의 현장은 살기좋았다. 그런데 평화로운 광주에 바람이 불어온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며칠 전이었지만 군인들의 군화소리는 시국이 비상상태임을 느끼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쿠데타는 군인들의 성공으로 마무리 될 즈음에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목소리는 군인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전국을 향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함과 동시에 광주라는 작은 도시에 총뿌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광주의 모습을 그들은 사태로 정의하면서 활동가들에게 폭도로 지칭했다. 군인과 경찰의 목숨을 빼앗는 폭도들로 정부를 치장하게 되었고, 수많은 시민군들은 나라를 전복할 폭도로 타도의 대상임을 방송에서는 연일 방영했다.
5.18의 주인공들은 공수부대원들에 진압되어갔다. 공수부대원들의 진압봉과 총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폭도를 진압해야 된다는 군인정신으로 변질되어 갔다. 군인들의 눈에는 5.18의 광주는 봄비로 거리를 청소하듯이 청소의 대상쯤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총과 칼로 희생된 이들은 인근 병원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닥은 비로 물들게 되었고, 고통으로 신음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광주의 아픔을 저자는 자신의 책 "광주의 아리랑"으로 승화하고 있다.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는 아픔을 아리랑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픔을 달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을 저자는 가슴치며 이 책을 쓴 듯 하다.
광주는 진행형이다. 광주의 아픔이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성과를 보지만 광주는 여전히 아프다. 아픈 광주를 저자는 소설로 이야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