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가만히 서서 잠시 마당을 바라보더니 비 이야기를 한다. 비가 너무 적게 왔다, 밭에 비가 좀 내려야 한다, 킬머크리지 신부님이 오늘 아침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런 여름은 처음이다.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에 아빠가 침을 뱉고, 대화는 다시 소의 가격, 유럽경제공동체, 남아도는 버터, 소독액과 석회 가격으로 흘러간다. 나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장화 뒤꿈치로 잔디를 뜯고, 차를 몰고 가기 전에 지붕을 철썩 때리고, 침을 뱉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기를 좋아한다.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 P13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 P25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 P27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 P28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 P30

나는 집에서의 내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P70

"입 다물기 딱 좋은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73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 P79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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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탁월함을 추구하던 메디치 가문의 리더들은 동질적인 것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것, 생소한 것, 이질적인 것에 희망을 두었다. - P83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는 이데아와의 완벽한 합일을 위해 존재한다. 개별적인 존재(현상)와 보편적인 이상(초월)이 부딪치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이룩하고자 했던 ‘생각의 빅뱅‘이었다. - P83

이질적인 것, 상이한 것에 희망이 존재한다. 서방과 동방이 만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만나고, 현상과 초월이 만났을 때, 코시모가 이끌던 피렌체와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 P84

세상과 단절된 채 폐쇄적인 성격이 강화되면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점점 더 작아져갔다. 르네상스의 창조정신을 견인하던 긍정적인 세계전망이 사라지고, 사적인 향락추구가 일상사가 되었을 때 피렌체의 위대했던 가문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 P92

가문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가문의 정신이다. - P96

"사업상 볼 일이 있는 것처럼 하면서 공연히 시뇨리아 궁 주위를 어슬렁거리지 마라. 시뇨리아 궁에서 소환장이 왔을 때만 그곳에 가고, 소환된 사무실만 방문하고, 다른 곳은 절대로 출입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널 주목하게 만들지 말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만약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면 꼭 필요한 곳에만 너의 모습을 보여주어라.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절대로 대중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마라." - P96

메디치 가문의 진정한 리더십은 끝까지 은둔의 미학을 지켰던 코시모의 삶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후대의 코시모들이 이름만 따르고 그 정신을 따르지 못했을 때, 메디치 가문은 멸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 P100

가문의 대는 끊겼으나 가문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 숨 쉰다. - P100

이 엄청난 보물 중에 보티첼리의 <코시모 데 메디치의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이 있다. 언제나 변치 않는 신중함과 겸손함으로 피렌체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이탈리아의 국부로 불렸던 코시모 데메디치의 정신이 피렌체 청년의 품에 영원히 간직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 P101

위대한 정신이 위대한 가문을 낳았다. 그 정신이 쇠퇴하자 가문은문을 닫았다. 메디치 가문은 정신의 위대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역사적 선례를 남겼을 뿐 아니라, 그 위대한 정신이 쇠퇴하면 그 역사도 끝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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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집단과 사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몰두하는 혼란 속에서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P61

대중들의 환호성에, 혹은 대중들의 야유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 아니다. - P63

코시모란 인물은 가업을 승계한 1429년부터 1446년까지의 행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그는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 P69

평범한 개인으로서 산다면 모를까, 지도자로서 한 시대를 이끈다는 것은 갈등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를 요구한다.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고, 집단과 국가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투쟁을 전개할 때, 지도자는 각기 다른 개인과 집단이 추구하는 힘의 역학관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 P69

둘째,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위기나기회가 찾아왔을 때, 냉정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 P70

마지막으로 그가 제시한 ‘힘의 균형‘ 정책은 조직과 집단에 활력을불어넣는 리더십의 모범이다. - P70

메디치 가문은 다양한 생각, 서로 다른 분야가 서로 만나서 충돌을 일으키도록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동서 사상의 빅뱅을 앞장서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융합 리더십 덕분에 이른바 전성기 르네상스의 찬란한 예술적 결과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 P73

코시모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개인의 알량한 도덕성으로는 지도자의 책무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려운 결단,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리더의 책무다. - P74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개별적 현상에는 모두 일정한 법칙과 원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피렌체 종교회의를 통해 큰 도전을 받게 된다. 각각의 개별적 현상 가운데 나타나는 법칙이나 원리에 선행하는 어떤 원형(이데아, The One)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주의 사상은 서방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지적 충격이었다. 피렌체 공의회를 계기로 유입된 동방 비잔틴의 사상, 특히 플라톤 사상으로 새로운 생각의 가능성이 열렸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사람들에게 플라톤 사상은 새로운 차원을 알렸다. 모든 개별자 가운데에 보편성이 존재하고, 그 궁극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 신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지적 도전이 허용되었다. 신비로운 이데아를 향한 열망으로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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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는 단순히 부를 창출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유지, 발전시켰던 기업 가문의 이름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시대적 효능을 다한 중세의 노후한 시스템을 마감시키고 새롭게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들은 경영이나 통치의 술(術)을 부린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업(業)을 이끌었다. 따라서 메디치는 한 가문의 이름이기보다는 인간성(humanity)의 한 꼭짓점을 찍었던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할 수 있다. - P8

메디치 가문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 새로운 시대를 태동시켰다. 그들은 사람을 뒤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끌어당김으로써 위대한 가문의 역사를 펼쳐낼 수 있었다. - P9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의 시각을 먼저 수정하는 것이다. - P11

"세례자 요한의 손가락을 보라! 우리 가문은 한번 맺은 인연은 절대로 변치 않는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의 손가락이며, 또한 우리 가문의 정신이다!" - P37

강자와의 경쟁을 피하고 몸을 낮추되,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라는 것이 조반니 디 비치가 세운 메디치 가문의 가훈이었다. - P38

유능함을 드러내지 말고 뒤로 물러설 것! 온화하게 몸을 낮추며 조용히 처신할 것! 이러한 유약겸하가 메디치 가문이 세상을 열어가는 첫 번째 신조였다면,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서 피렌체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여민동락의 정신은 메디치 가문의 두 번째 신조였다.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피렌체 시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추진하지 않았다. - P39

메디치 가문은 대중이 원하는 일이라면 손해 보는 일도 했고, 대중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이문이 남는 일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았다. 동양의 사상으로 보자면, 메디치 가문은 유약겸하와 여민동락의 정신으로 출발한 것이다. - P39

동서고금의 변치 않는 진리가 또 있으니, 바로 대중의 편에 서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해야 기업도 지속 가능하다. 그 지속 가능을 도모하는 기업은 메디치 가문처럼 여민동락해야 한다. 시민을 위하고, 그들과 기쁨을 함께했던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여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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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누군지 제가 모를까? 제 모습을 제 마음대로 결정하지못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제 자신은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한 인간이고 싶은 것에 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일까? - P13

소피는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이렇게 늘 이 세계에 있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4

‘지금 난 이 세계에 있어. 하지만 언젠간 사라질 수도 있잖아.‘
죽은 뒤에 또 삶이 있을까? - P14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의 양면이었다. - P15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 P17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이다. - P29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 하는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즉 철학자들이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그 무엇을 말이다. 그 무엇은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라고 늘 속삭인다.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훨씬 전부터 이 무엇을 몸소 체험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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