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정선으로 들어가자면 속칭 ‘비행기재‘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장 사람들 말로는 시외버스를 탈 때 생명보험 들어놓아야 한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로 험한 고개다. 벼랑을 타고 오르는 버스 안에서 저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그 아찔함에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장사가 없다. 특히 운전석 쪽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은 마치 허공에 떠서 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에 비행기재라는 별명이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높기는 오지게도 높아 옛 고갯길 이름은 별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뜻으로 성마령 (星摩嶺)이라 했다. - P104

내남없이 강원도를 말할 때는 자기가 경험한, 정확히는 감성적 소비의 대상으로 되었던 추억으로서 강원도를 말한다. 여타의 지방을 말할 때면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이 이룬 향토문화를 먼저 말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것이다. 그것조차도 봄날의 강원도는 좀처럼 잡아내지 못한다. - P106

자신에게 부여된 별명을 거부하는 마음이란 곧 상처를 건드린 아픔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 P107

언제부터인지 나는 꽃과 나무를 보면서 한송이 한그루의 빼어난 아름다움보다는 낙엽송처럼 그 개체야 별스런 개성도 내세울 미감도 없지만 바로 그 평범성이 집합을 이루어 새롭게 드러내는 총합미를 좋아하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들국화, 솔숲과 대밭.………… 지난 늦가을 아우라지강을 찾아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비껴선 낙엽송 군락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한 의문이 있었다. 저 아름다움의 참가치에 이제야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나이를 들어가는 연륜 덕분인가, 아니면 80년대라는 간고한 세월을 살아왔던 경험 탓일까." - P108

"모르고 볼 때는 내 인생과 별 인연 없는 남의 땅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땅으로 가슴깊이 다가온다"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2021년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21년 개정판)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일이든 하고야 마는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정몽주를 그동안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건지 다르게 그려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의 동지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권력 아니던가. -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김삿갓 - P86

집이란 언제나 거기에 알맞은 사용자가 있는 법이니 의상 같은 스케일이 아니고서는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그대신 큰스님들은 간간이 이곳을 거쳐가며 호방한 기상을 담아갔던 것은 아닐까. 절집도 사람집과 마찬가지로 살기 편한 집과 놀러 간 사람이 편한 집은 다른가 보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품은 하나의 물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물(物) 자체로 보는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像)을 갖고 이야기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오브제(objet)가 아니라 이미지(image)로 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이미지를 극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왔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곧잘 채택했던 방법의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시적 영상으로 대치시켜 보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도 엄두를 못 내는 이 방법을 조선시대에는 웬만한 선비라면 제화시(題詩) 정도는 우리가 유행가 한가락 부르는 흥취로 해치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 침묵의 물체는 생동하는 영상으로 다가오게 하였다. 그것은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며,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 P73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 ‘논제필가’
한석봉(韓石峯)의 글씨는 여름비가 바야흐로 흠뻑 내리는데 늙은 농부가 소를 꾸짖으며 가는 듯하다.
서무수(徐修)의 글씨는 반쯤 갠 봄날 은일자가 채소밭을 가꾸는듯하다.
윤백하(白下)의 글씨는 가을달이 창에 비치는데 근심에 서린 사람이 비단을 짜는 듯하다.
이원교(李圓嶠의 글씨는 겨울눈이 쏟아져내리는데 사냥꾼이 말을타고 치달리는 듯하다. - P74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 낮잠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開寺)이다.
한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자던 어린애가 잠이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 내소사(來蘇寺)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풍 부석사(浮石寺)이다. - P75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 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뉨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이라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배치가 부석사인 것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일 것이다. - P76

길고 굵은 나무와 짧고 아기자기한 부재들이 중첩하면서 이루는 변화있는 조화로운 구성에서 눈밝은 사람들은 선율을 읽는다. 장(長)과 단(短)의 율동이 거기에 있다. - P84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無限江山)이 발 아래 다투어 달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乾坤)이 가슴속으로 거두어들어오니 가람의 승경(勝景)이 이와 같음은 없더라.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