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 간절히 쓰는 사람만큼은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한 명 한 명의 구원이 더해질 때 세상도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 P5

청소노동자였으며 이혼 후 5남매를 혼자 양육한 여성인 작가의 사유의 깊이와 문장은 일상을 유지하는 ‘집안일‘로부터 면제된
‘남성‘ 작가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수월성을 보여준다. - P6

감히 누가 그의 글을 연민으로 읽을 수 있을까. 글에서 마이아 에켈뢰브는 묻는다. "어떻게 ‘여자들‘은 항상 더러워진 것을 바꿀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나는 읽으며 생각한다. ‘어떻게 그는 항상 따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세계를 염려할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 P7

이 세상은 지옥일 뿐이고 그 안에서 인간은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영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악마다. -쇼펜하우어- - P9

출근할 때 나는 다섯 아이 모두 겨울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 손에 펜을 쥔 채 앉아 있지만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마침내 나는 재빨리 "바지 한 벌과 재킷 한 벌"이라고 적는다.
나는 온통 한국 생각뿐이다. - P14

나는 한 가지를 아주 깊이 생각했다....... 인간의 인내를.
다른 종류의 ‘자극‘ 없이 인간은 매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그러한데, 그 이유는 이웃들 사이에서 큰 불평이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등등....... 작은 집들에서 아내들은 작은 인형의 집에서처럼 살아간다. 저들 각자는 가장 좋은 커피잔들과 가장 흰 침대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한 진짜 남편의 표정을 반드시 보여준다. 저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들 인형의 집에서 놀 수 있을 것인가? - P18

만일 사람마다 삶을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 자기를 위해 길을 밝혀줄 불빛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내 빛은 오랫동안 작가 하리 마틴손이었다. 마틴손은 굴욕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굴욕을 이겨낼 것이다…………. 마틴손은 저 밖에 서서 부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밖에서 그 일을 해낼 것이다. 마틴손은 무기력해지지 않고 가장 비천한 일들을 해냈다. 따라서 나 역시 청소용 양동이에 익사하지 않고 내가 맡은 청소부 일을 해낼 것이다. - P18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욕으로 가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늘 존재할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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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거리를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그 모두가 어떻게 보이고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이후 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잡을 것들은 지금 내가 빤히 바라보는 것들이 아닐 것임을 그때 이미 알았다. - P126

지금 난 내가 늘 원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대부분 내 이름조차 모르는 곳에서의 삶, 그래서 얼마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상황이 되면 행복감, 희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 등이 찾아오리라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 P126

친구 관계란 단순하지만 또 복잡하기도 하다. 우정은 표면적으로는 자연스럽고 다들 쉽게 당연시하지만, 그 아래쪽으로는 수많은 세상이 있었다. - P127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성취였다. 그걸 이루려 애만 쓰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까지 바라면 과하지 싶었다. - P129

그녀 자신에게도 그랬겠지만, 그녀가 소유한 물건에서는 하나같이 세상살이의 무게가 느껴졌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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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다음에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책을 많이 가지는 것이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 P115

교회에 가본 지가 일 년이 넘었다. 고향을 떠난 후로 가지 않았으니까. 난 여전히 신을 믿는 것 같다. 달리 뭘 어쩌겠는가?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신에게 묻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나와는 맞지 않는 답이 나올 것이 분명하니까. 이제 난 내가 값을 지불할 수 있는 한은 내게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값을 지불할 수 있는 한." 어느새 주객전도가 되어 그 구문이 내 삶을 좌우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세상을 떴다면, 이 말이 내 비문이 되었으리라.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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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자기 본심을 말하지 못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배워서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 정도 자리에 있는 남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언제나 정확히 알고 만사가 그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이다. - P96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 아직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 P97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서 누구는 재물을 얻고 누구는 죽음을 얻지." - P103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엄마 아빠는 사뭇 진지하게 이 아이가 영국의 대학에 입학해 의사나 변호사, 아니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는 기대를 주고받았다. 아빠가 자기 아들에 대해서, 나는 쏙 빼놓고 같은 부류인 아들들에 대해서만 그런 말을 하는 건 상관없었다. 아빠는 나를 전혀 몰랐으니까. 아빠가 나를 보며 흥미진진하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상상하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날 잘 알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이나 잘 알았다. 당시 나는 우리가 아주 똑 닮았다고 보았다. 그런 엄마가 아들이 앞으로 해낼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울지 하는 생각에 빠져 눈에 눈물이 그렁해질 때마다 내 심장에는 칼이 꽂히는 심정이었다. 자신을 똑닮은 자식인 나와 관련해서는, 약간이라도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는 인생의 시나리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난 속으로 엄마를 ‘여자 유다‘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그때조차 완전한 절연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엄마와의 절연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 P104

머라이어는 내 상황을 완전히 잘못 해석했다. 펼쳐 읽으려면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해서 손이 아플 지경인 이 두꺼운 책으로는 내 삶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내 삶은 그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동시에 더 복잡했다. 내가 살아온 이십 년 세월 가운데 십 년을 살아온 인생의 반을 난 끝나버린 사랑을 애도하며 살았다. 아마 평생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참사랑을 - P106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부분들이 변했고, 아직은 나도 잘 알지 못했다. 나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는데, 과학자보다는 화가의 방식이었다. 정확도와 계산에 의지할 수가 없었다. 믿을 것은 직감뿐이었다. 딱히 마음속으로 계획한 바는 없었지만 그림이 완성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 절망이 있었다. - P108

나 혼자만의 지옥에서 말없이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고 내게 찾아든 감정이 있을 법한 감정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그런 삶에서 벗어났다. 내 과거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선이 있다. 그 선은 네 스스로 그릴 수도 있고 누군가 대신 그려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생긴 선이 너의 과거다. 지금까지 거쳐온 수많은 네 모습과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일들. 더이상은 네가 아닌 네 모습들, 이제는 빠져나온 상황들, 그것이 네 과거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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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빈방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도 딱히 필요하지 않은 그런 방이 있다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필요한 것보다 많이, 집집마다 딱 필요한 것보다 하나씩은 방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 P71

나로서는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불행을 바라보면, 재미도 있고 기분전환이 되었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도 많이 봐서 뻔했으니까. - P71

장소만 바뀌면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들을 완전히 내 삶에서 쫓아내버릴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내 앞에 펼쳐질 때마다 만사가 어디나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가 형체를, 내 과거의 형체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 P74

"멀리 도망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네 엄마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내 피가 네 속에 흐르고 있고, 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까."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쇠창살보다 더 단단한 창살이 달린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살라는 선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P74

난 루이스와 머라이어의 아파트로 가서 내 방 침대에 앉았다. 여기서 보낸 여름을 떠올려보았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동일성을 발견했다. 무척이나 행복한 순간들을 맛보았고 내 미래를 상상해보고픈 갈망이 생겼지만 동시에 환상이 깨지며 대단한 실망감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삶이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한없이 나를 끌어내리는 위험하기만 한 저류가 아니라 이렇게 기복이 있는 게 맞지 않을까? - P75

태어나 자란 곳이 더는 견딜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져, 익숙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안식처가 되어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 P77

나는 그녀의 친구들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새삼 깨닫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닌 척해도 소용없었다. 난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유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리 받아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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