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는 준성의 말을 들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 P123

처음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 P125

무언가 거침없는 물살이 그의 인생을 할퀴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명주가 어떻게 해줄 수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인생을 좀더 살았다고 해서 그 물살에 언제나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었다. - P127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디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 P138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겪어보니 인간들 중 8할은 보통 사람이고, 1할은 뼛속까지 못된 사람, 1할은 좋은 사람이라고. 준성은 방금 그 1할의 좋은 사람 한 명을 태우고 온 것 같았다. - P157

착하다는 말, 대견하다는 말, 효자라는 말도 다 싫어요. 그냥 단지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지만요.......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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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은 견고한 어떤 것이 아니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 P32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잖아. 처음과 마지막은 항상 다르잖아. 어떻게 처음과 마지막이 같을 수가 있니.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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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는 법은 없다. 인생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듯이.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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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스물다섯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정말 싫은 나이였다. 나는 열다섯 살처럼 생기발랄하지도 않았고 서른다섯 살의 오후처럼 지쳐 있지도 않았다. 나는 내일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어 항상 불안하였다. - P12

바다처럼 오랜 시간이란 어느 만큼인가. 모래처럼 많은 마음들, 하늘처럼 아득히 멀리 있다는 것. 나는 궁금하였다. - P17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늙고 초라해져서 먼지투성이 국도에서 사과를 팔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을 뿐이야. 그것도 형편없는 푸른 사과를. 저녁이 되어 아무도 이 푸른 사과를 사러 오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확실해질 때까지. 내가 영원히 가지 못할 먼 데로 나 있는 길을 바라보면서 손으로 짠 두꺼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아주 어두워질 때까지 그렇게 있을 것 같은."
생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은 하나도 돼주지를 않았으니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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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아버지를 운동시키려 매일 그렇게 열심인데 노인은 그런 아들의 마음 따윈 헤아리지 않는 듯했다. 마음이야 백번 헤아린다 해도 술에 관한 한 제어가 안 되는 것이겠지. 그러니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버지 역시 그랬으니까. 명주는 모두 그렇게 제 위의 하늘만 보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P66

하지만 나쁘기만 한 인생은 없는 것 같았다. 자린고비 아버지가 살아 생전 열심히 부은 연금으로 엄마가 살았고 지금은 명주가 살고있으니. - P67

사람도 너무 빡빡하믄 매력 없잖여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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