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빈방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도 딱히 필요하지 않은 그런 방이 있다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필요한 것보다 많이, 집집마다 딱 필요한 것보다 하나씩은 방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 P71

나로서는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불행을 바라보면, 재미도 있고 기분전환이 되었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도 많이 봐서 뻔했으니까. - P71

장소만 바뀌면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들을 완전히 내 삶에서 쫓아내버릴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내 앞에 펼쳐질 때마다 만사가 어디나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가 형체를, 내 과거의 형체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 P74

"멀리 도망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네 엄마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내 피가 네 속에 흐르고 있고, 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까."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쇠창살보다 더 단단한 창살이 달린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살라는 선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P74

난 루이스와 머라이어의 아파트로 가서 내 방 침대에 앉았다. 여기서 보낸 여름을 떠올려보았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동일성을 발견했다. 무척이나 행복한 순간들을 맛보았고 내 미래를 상상해보고픈 갈망이 생겼지만 동시에 환상이 깨지며 대단한 실망감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삶이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한없이 나를 끌어내리는 위험하기만 한 저류가 아니라 이렇게 기복이 있는 게 맞지 않을까? - P75

태어나 자란 곳이 더는 견딜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져, 익숙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안식처가 되어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 P77

나는 그녀의 친구들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새삼 깨닫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닌 척해도 소용없었다. 난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유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리 받아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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