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난 책을 읽으며 평생을 보냈어. 그리고 내 생각에 나는・・・・・・ (그는 한순간 머뭇거린다・・・・・・) 나는 그걸...... (그가 다시 말을 멈춘다......) 그 인생 la vie 이란 걸 살지 못한 것 같아, 그 진짜 인생 말이다." - P95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가 있는 한,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10

"레퍼토리 하나 없이 목소리만 좋은 것,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야. 레퍼토리가 낭독자를 만드는 거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해. 초조해하지 말고, 소설 한 권 한 권, 단편집 한 권 한 권, 그러면 너는 바로 널 감동시키는 진주와도 같은 주제들을 발견하게 될 게다. 너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어야만 잘 읽을 수 있으니까. 네가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재미있거나 진지한 텍스트들을 선택하렴. 그리고 차츰차츰 중심축을 만들어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그렇게 해서 장르나 주제, 세상의 이런저런 지역이나 저자 이름으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요소들을 어떻게 배합시키느냐에 따라 온갖 조합이 가능해지지." - P111

"너는 금세 푹 빠져들게 될거다. 텍스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건 정말 짜릿하고 감동적이니까. 어떤 한 단어 때문에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의 어떤 단락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을, 밀려갔다 싶어도 매번 새롭게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되밀려오는 집단창작물이라고 생각하렴. 만약 요행히 그게 인생과 직결된다면, 거기서 너는 걸작을 만나게 되는 거야." - P112

자기가 맡은 역할을 위해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해야 하는 이야기꾼이나 배우와는 달리, 낭독자는 자기가 읽는 문장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오직 투명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그는 절대적으로 믿는다. 오로지 책의 내용만이 밝게 빛나야 한다. - P114

"우리가 쓴 모든 것의 최초의 선구자인 신은/ 사람들이 취해 있는 이 땅 위에서/정신의 날개를 이 책 속에 넣어놓았다./ 책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나 거기서 날개를 찾아,/ 영혼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저 높은 곳을 날 수 있다./ 학교는 예배당과 같은 성소이다./아이가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하나씩 따라 읽을 때 / 문자 하나하나마다 미덕이 들어 있으니. / 그 심장은 이 겸허한 미광 속에서 은은히 빛난다. / 그러므로 아이에게 책을 주어라/손에 램프를 들고 걸어라, 그 아이가 그대를 따라올 수 있도록." - P126

노인요양원에서 이웃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이웃들은 서로 유대를 맺는다. 서로 공감한다. 자잘한 도움을 주고받는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떤다. 우리가 책방 할아버지의 방에서 책 읽기를 시작한 이후로, 책방 할아버지와 그의 옆방 할머니 사이에 진지한 우정이 맺어졌다. 책 읽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 P132

나는 억지로 눈물을 삼킨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 읽기를 통한 우리의 만남은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를 마치 손자와 할머니처럼 암묵적인 결탁을 맺은 공모자들로 만들어주었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받는 것만큼 주고 싶은 마음이 일 때, 서로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적당한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 P134

목소리가 가식적이다. 이건 아니다.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다.
당연히 누군가와 직접 통화할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에도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 그런 난처한 상황에 처한 꼴이다. "제가 부인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셀레스틴, 저예요, 그레구아르예요!"와 같은 식 말고, 아니, 정말로 진지하게,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 걸까?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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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마음을, 말로 꺼내놓고야 알 수 있었다. 이제야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이 있는데, 그걸 걷어차고 또다른 곳으로 탈주하려는 마음이 스스로도 버거웠던 것이다. 뭔가를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무겁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런 마음이 나를 짓눌러 아침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 P40

엄마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다. 두 가지 같지만 실은 한 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수치심. 나는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에서 수치심을 느꼈고 그것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자 애썼다. 나는 엄마가 창피함이나 수치심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거나 좋던 분위기도 잡치게 만드는 엄마의 들쑥날쑥한 날카로움이 나는 언제나 부끄러웠다. - P59

엄마가 가르쳐준 두번 째가 말이나 해봐, 하는 말이었다 그 말 역시 나에게는 수치심을 동반했었다. 나는 부탁이나 흥정이 너무 싫고 어려웠고 그런 상황이 오면 받아내야 할 것도 포기하는 성격이었는데 엄마는 그런 내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 P60

직업을 바꾸게 되는 때, 그런 때는 살면서 몇 번 없고, 익숙했던 것과 작별하고 새로운 것과 인사하며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니까. 거기에 그 직업을 좋아하게 된다면, 없던 용기까지 생긴다. 새로워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 P61

한동안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잔인했다. 그렇게 구는 법밖에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비정하고 박정한 면은 모두 엄마에게서 왔다고, 꽤 오래 생각해왔다. - P63

엄마와 나는 화해하는 방식도 이상했다. 모든 엄마와 딸이 조금쯤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 없이 화해했고 서로에게 죽일 듯 퍼붓던 심한 말을 잊었다. - P63

아무래도 슬픔은 고체다. 내가 제일 많이 떠올리는 형태는 어릴 적 봤던 바이올린 활에 바르는 송진덩어리다. 슬픔은 마음 한구석에 송진 같은 고체 형태로 존재하다가 어떤 녹는점에서 녹아 흐른다. 액체가 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슬픔의 녹는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나 체온, 혹은 해질녘의 버스 정류장이나 혼자 멍하니 보내는 주말의 긴긴 낮일 수도 있다. - P67

나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겉돌까봐. 서로의 현재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들킬까봐. 순간의 반가움으로 덜컥 약속을 잡았다가 몇 시간을 곤란하게 보낼까봐. 무엇보다 과거의 나를 기억할까봐 두려웠다. 나는 다 잊었는데. 잊으려고 애썼는데 말이다. 그게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묻는대도,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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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일한 첫 달부터 나는 주방일이라는 게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빡세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 P18

"나처럼 나이들어 몸은 망가졌지만 정신은 멀쩡한 인간이 되면 말이지." 그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혼자일 때 고통을 덜 느껴. 다른 노인네들을 보고 있으면 병들고 망가진 자기 모습이 떠오르니까." - P21

"Pauca meæ, 이건 라틴어야. ‘내게 남은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지. 여기 보이는 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들 가운데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아. 아, 나머지를 전부 잃고 오로지 이 삼천 권만 선택해야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던지!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에 비견할 만한 고통이었어. 그 고통이 어떤 건지 알겠나?" - P22

타인의 삶을 그렇게 체화해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미래에 직면하게 될 때의 그 불안. 홀든의 두려움은 바로 나의 두려움이 된다. - P36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유일한 즐거움은 왔던 방향을 되돌아가면서 거주자 각자에게 잘 다려서 고이 접은, 세제 향기가 폴폴 나는 깨끗한 옷가지들을 돌려주는 것이다. - P42

기력이 없어서 침대 위에 눕거나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반수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 나는 그 잠든 행성의 침묵을 지켜보면서 최악의 방식으로 끝을 향해 가는 그들의 생을 바라본다. - P43

아, 생업의 세계여, 얼마나 행복한지! 이 문제를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엄마? 그럴 순 없다. 피키에 씨? 이런 일로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책 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 가하는 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 P44

다 지나고 나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지만, 걷고 있는 당시에는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보이지 않아, 그저 본능이나 직관에 따라 걸어갈 뿐. 하지만 부르디외, 바르트, 푸코, 프로이트, 마르크스 같은 많은 저자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그들에게서 빛을 얻었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 P51

네가 옳다고 믿고, 확신에 가득찬 무언가를 위해 행동에 나설때 말이다. 타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을 품는 건 문제가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손을 놓는 순간, 바로 그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지. - P52

지적 모험을 넘어, 서점 주인이 날마다 접하는 건 바로 인간 존재들이 이루어낸 응축물들이야. 그런 응축물들을 접할수록 독단에서 멀어지게 되지. - P53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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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든과 선배가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잘 알고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 - P20

아름다운 삼각형을 원하는 건 나만의 꿈일까. 언제나 삼각형을 상상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둘은 너무 적고 넷은 너무많으니까. - P23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자고 약속했으면, 그곳에 있어야 행복하다. - P30

내내 사진만 배우다가 갑자기 망치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다가 소품을 구하러 다니고, 그러다가 동물원에서 새끼 토끼를 데리고 나오는 삶은 어떤 삶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 P32

사진과 리페인팅을 비교하자면 사진이 좋았다. 사진 찍는 일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빛이 다가들길 기다리는 일, 셔터 버튼을 누르기까지 기다리는 일, 현상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일.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기를 기다릴 때의 초조함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초조함 중 가장 좋은 초조함이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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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배를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똑 부러지는 삶은 어떠려나, 상상도 되지 않았다. - P14

내가 회사에서 하는 작업들, 정확히는 그 작업을 하러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고 작업 이외의 ‘회사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점점 흥미와 에너지를 잃기 시작한 것은 사진을 찍게 되면서부터였다. 따라 그리는 것 말고 있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찍고 싶어진 무렵. 이제까지 내 일에 대한 최고의 칭찬은 진짜 똑같다. 였다. 내가 그리는 인형은 실제 모델과 똑같았으면 하고 바랐으나, 언제부턴가 나는 이전의 나와 똑같고 싶지 않았다. 다른 마음이 든 순간부터, 똑같음을 포착하는 일에 점점 질리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메라를 얻게 되었다. - P16

신기하게도 카메라로는 똑같은 것을 다르게 찍을 수 있었다. 나는 가방에 카메라를 품고 다르게 찍을 수 있는 대상과 빛을 찾아다녔다. 무엇을 찍을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도 좋았다. 의뢰받아 그리는 일이 아닌 선택한 장면을 찍는 일. - P16

해든아, 아름아, 가 아니고 오로지 이름만으로, 당연히 내가 먼저 시작한 것은 아니고 해든의 방식이었다. 해든이 먼저 그렇게 부르는 걸 보고 나도 해든을 그렇게 불렀다. 해든의 방식으로, 거기엔낯선 다정함이 있었다. 동시에 미묘한 거리감도 있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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