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체들은 모든 사람, 모든 사람들 사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때 존재하며, 그로부터 우리는 삶의 충만함을 얻고 더 큰 생태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 - P22
차이가 없다면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이는 인간이 관계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 P22
물건은 관계 형성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물건의 가치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잠재력에 있다. - P23
세상에는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가족이 되는 곳도 있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유산을 물려주거나 불구덩이에서 구해주는 의무로 이어지지 않지만 음식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지속적인 헌신으로 이어지긴 한다. ‘내가 너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너는 내게 보답할 의무가 있다‘는 암묵적 관계 속에서 음식은 매끄러운 윤활유이자 사람들을 연결하는 끈끈한 접착제다. - P26
이건 종말 이후로 또 하나 달라진 점인데, 사람이 없고 라디오와 스냅챗과 페이스북이 없으니 나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사람의 감정을 느낀다. 감자밭은 따뜻한 봄날에 다정하다. 집은 잔뜩 짜증을 내며 지붕에 구멍 하나를 더 냈다. - P43
날씨는 괴팍하고 신뢰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한시도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인 같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는 그런 남자. - P44
엄마는 말다툼하는 대신 그저 자신을 닫아 버리는 사람이다. 문을 닫거나 책을 덮듯이. - P15
때로 엄마를 보며, 나는 사람이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동시에 추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 P16
엄마는 남의 겉모습을 추하게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이 추한 것이라고 했다. - P16
"언니는 따옴표 같지, 늘 진지하니까. 나는 좀 정신없어서 쉼표같고, 우윤이는 기본 표정이 물음표고, 의외로 해림이가 단단해서 마침표고…………… 너는 말줄임표다. 말줄임표." - P175
어떤 말들은 줄어들 필요가 있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의 억울해하는 말 같은 것들은 규림은 천천히 생각했고 그렇게 여과된 것들을 끝내 발화하지 않을 것이었다. 타고난 대로, 어울리는 대로 말줄임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 P175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 P178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어찌되었든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으니까." -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