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꿀벌의 예언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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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 집중 호우로 수십 명이 유명을 달리했는데 이번 주엔 폭염이 찾아 왔다. 열대 기후처럼 한 낮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리기도 한다. 인구 증가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지구 환경을 파괴했다. 이제는 탄소 중립을 하지 않으면 뜨거워지는 지구를 멈출 수 없다는 위기감을 자각한 지구인이 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물쓰듯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음 세대를 위해 이번 세대들은 자연을 파헤지는 일을 더 늦기 전해 멈춰야 한다. 이런 경고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종말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금처럼 통신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국지적인 전쟁이나 홍수 등의 재난 재해에도 도시 전체가 사라지는 일들이 드물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지중해의 해양 세력과 오리엔트 대륙 세력과 이집트로 대변되는 아프리카 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스라엘이 있다. 예루살렘 등 오래된 고대 도시를 발굴하다 보면 시대별로 지층이 다르다고 한다. 침공한 세력이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건물을 재건하고 살다가 또 그들도 멸마의 순간을 맞이하는…그런 순환이 수천년의 세월 가운데 층층이 쌓여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꿀벌의 예언은 현재를 사는 주인공들이 과거 여행을 통해서 미래까지도 들여다보는 포맷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소설이야 상상의 산물이지만 그의 필력이 허황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검증된 과거 역사 자료를 지혜롭게 배치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꿀벌의 예언에서는 그의 백과사전 시리즈 중에 ‘므네모스’편을 활용한다. 구약 성경과 요세프스 등의 기록을 원용한 므네모스 시리즈는 소설 전개의 이론적 배후를 두텁게 해 준다. 뭐 이런 식이다. 므네모스가 말하는 인간 존재의 3가지 이유는? 배우기 위해, 경험하기 위해,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소설 꿀벌의 예언은 인간이 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 바로 무엇을 해야할지 단서를 주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수없이 알려 주었음에도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 심판 경고를 무시했다. 그 결과 그들과 가축들은 익사를 면할 수 없었다. 지구 온난화는 곤충의 세계에도 변화를 불러 왔다. 그중에 꿀벌들은 점차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죽어가고 있다. 꿀벌이 줄어들면 식물과 꽃들은 수정을 할 수 없게 되어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이미 농업 현장에서 이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경고한다. 꿀벌이 멸종할 때 인간도 마지막을 맞이할 것임을.

*** ***
지난번에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았나. 시간은 마치 나무와 같아서 자네가 하기에 따라 고정된 현재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난번에 자네의 정신이 찾아왔을 때 날 본 곳은 정원의 나무 밑이었지. 인공적인 배경이었단 말이야. (제1권 67쪽)

그런데 말이죠. 두 분은 그 퇴행 수면이라는 걸 통해 이 이동이 가능해요. 두 분의 상상력이 작동해서겠지만 어쨌든 두 분한테는 시공간의 이동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두 분의 정신은 여기, 이 다른 시공간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는 거죠. 너무도 <현실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두 분은 정말로 그 과거에 다녀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그렇죠? (제1권 244쪽)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 하지만 저 갈매기는 물고기를 못 잡아도 개의치 않아. 금방 잊어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동물은 인간처럼 실수와 실패에 발목 잡히지 않아. (제2권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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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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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손에 잡고 읽게 된 책. 이용순이란 사진가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질 좋은 종이에 흑백 사진과 함께 갇힌 담장 안에서 꾹꾹 눌러쓴 노트 글을 책으로 엮여낸 글을 읽어가다 보니 시나브로 그의 삶과 단상에 어느 순간 공감을 하게 되었다. 본래 저자는 사진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던 사진가였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 그가 모종에 일에 엮이게 되어 많이(!) 억울할 수 있는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일순간에 자유를 제한 받게 된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카메라를 소지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마치 요리사에게서 칼을 빼앗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저자는 구치소-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를 수용하는 곳-를 거쳐 교도소를 경험하게 된다. 몇 겹으로 닫힌 그곳은 수용자(밖에서는 죄수라 부르는)의 육체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마저 통제받게 한다.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통의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리는 그곳의 풍경으로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사진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갇혀 사는 사람들의 일과와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저자는 13권의 노트에 수형 생활 중 마음의 눈으로 찍은 단상을 문자로-짧은 산문과 시편으로- 찍어 두었다. 카메라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을 터. 때문에 독자는 갇힌 자들의 생활 모습과 시간을 죽이는 방법을 제3자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수형 생활에도 적용될 듯. 이등병 때 구백 일 남짓한 군생활을 헤아리다 절망했던 잠 못 이루던 밤의 느낌이 저자의 심정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자유를 속박당하고 죄수복을 입게 된다는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옷을 골라입을 자유도 없고 음식도 선택할 자유가 없는-물론 영치금으로 사식을 구매할 순 있다- 그런 생활은 보통의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에세이다. 아닌 보면 볼수록 묵직하게 눈길을 머물게 하는 사진책이다. 카메라 없이 마음의 사진을 써내려 간 저자의 사진 전시전이 언제 열리는지 궁금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듯 높은 담장 속에 사는 그들에게도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 ***

사진은 분명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 인해서 사진은 거짓이 아닌 참으로써 내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내적 경험은 감정으로써의 경험이며 이는 생각 혹은 사고에 의존한다. 또 이는 외적 경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일 수 있다. 사진은 시일 수 있으며 시는 사진일 수 있다.(29~30쪽)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가라는 이유로 나는 추상의 단어를 시로 쓰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시로 환원시키는 것에 애를 먹는다.(30쪽)

나는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로 가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밝은 세상으로 떠나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세찬 비가 내렸다. 지난 2년 동안의 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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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팀장의 홍보전략과 리더십 - 인문학으로 승부하는
이상헌 지음 / 청년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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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듣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주제 중의 하나는 이순신 장군과 그가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구어낸 23전 23승이란 전과가 아닌가 싶다. 본래 북방의 국경지역에서 여진족과 대치하던 말단 군관이던 이순신이 수군 지휘관으로 발탁된 데는 유성룡의 추천과 홍보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인재를 추천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추천자 또한 연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목감이 될 사람인가 신중히 살핀 다음 자기 이름을 걸고 임금에게 추천을 했던 것. 여기서 이끌어 낼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용인술을 잘 하려면 두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바로 전략과 리더십이다.

오랜 세월 지속되던 내전을 마침내 종결한 일본의 풍신수길은 명나라와 조선 정벌을 명한다. 전국에 산재한 잠재적 경쟁자인 영주들의 군사력을 외국 전쟁을 통해 소모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한다. 어쨌든 수십 년간 실전으로 단련된 왜군에 비해 평소 농사를 짓다가 변이 생길 때 소집되는 조선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패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꾸준하게 함선을 개량하고 함포와 궁술, 해상 진법 등을 훈련시킨 이순신의 수군은 전세를 뒤집는 성과를 낸다. 비법은 따로 없었다. 적군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조선 수군의 약점 대신 강점을 극대화 시키는 전략. 그리고 육전의 패퇴로 실추된 사기를 끌어 올리는 이순신의 솔선하는 리더십이 결합한 피땀눈물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회 생활 대부분을 홍보맨으로 일한 저자 이상헌의 신작 (인문학으로 승부하는) 이 팀장의 홍보전략과 리더십은 가장 현대적인 홍보 전략을 소개하면서 수천년 또는 수백년 전의 인물들을 소환해 낸다. 손자 병법은 물론이고 공자, 이순신, 나폴레옹, 요순 임금, 당태종, 한나라를 세운 유방, 거기에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난 스티브 잡스까지 … 대부분 나라의 운명을 바꾼 변곡점에서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기술 또는 트렌드를 이끌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변화를 이끌거나 현재를 지켜낼 굳건한 전략이 있었고, 이것을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할 리더십을 실천했다. 그 결과 이순신은 이길 전투를 준비했고 23전 23승이란 성과를 냈다.

오늘날에도 사람의 심리는 그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게 관심을 가져 주고 감성을 터치하는 홍보에 마음을 주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경계한다. 눈 앞의 이익을 좇아 조작할 때는 끝내 그 홍보는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105쪽). 저자가 인문학 특히 병법을 다룬 고전과 인물을 빈번하게 언급하고 인용한 데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활용한다는 것이 오늘날 홍보와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최근 중국 내에서도 재평가를 받고 있는 위나라의 승상 조조는 인재를 널리 등용했다. 군사 참모들의 조언을 듣고 나서 조조는 최종적으로 자신이 전략을 선택하고 실행했다. 물론 실패했을 때도 자신 탓을 인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 결과 조조는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만들게 된다.

현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업인들, 특히 그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민하는 홍보맨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책 제목에 그 답을 적어 놨다. 1) 인문학으로 승부하라 2) 전략과 리더십을 갖춰라. 비법과 첩경은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면 목표 지점에 가까워진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반증한다.

*** ***

비즈니스맨들을 비롯해 홍보맨들도 마찬가지다. 직급과 직책이 올라가면서 일하는 시간만 늘릴 게 아니라 실력도 늘려야 한다. 조직원들을 따르도록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상황을 알아야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다. 홍보 주니어들이 전략과 리더십 역량을 배우고 익혀 홍보 리더가 되는 그날을 기대한다.(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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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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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할 때 범우사에서 출간한 나관중판 완역 삼국지 5권을 독파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소설 삼국지는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편역과 재해석을 해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원말 명초를 살았던 뛰어난 통속 소설가였던 나관중의 영향력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이는 청대에 삼국지 연의를 120회분으로 정리한 모종강의 모본에도 마찬가지다. 나관중과 모종강은 유비를 존중하고 조조를 비하하는 당시 사람들의 성정을 소설 속에 공고히 했다. 그 영향으로 중화의 영향권에 있던 나라 사람들은 촉한정통론에 동조되었고 유비와 관우, 제갈량의 팬클럽 회원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 머리에 고착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들이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내보내는 것과 언론들이 특정 사건이나 인물들을 융단 폭격하듯 다루는 것 또한 이 점을 노린 것 아닐까 싶다. 조조에 대한 인식은 사람 보는 눈은 있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만 교활하고 야비하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역대 중국 왕조와 지배세력들은 한족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웠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또한 중원의 한족들의 환심을 사고 내부 결속을 위해 소설 삼국지연의를 적극 활용했다. 모종강이 나관중의 소설을 다시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허우범 교수는 말한다. 10여년 만에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다시 찾아가 보니 바뀐 정서가 느껴졌다는 거다.

가장 큰 변화는 간웅이란 이미지에 묶여 있던 조조에 대한 평가와 인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려졌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개방과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세태 가운데 허울 뿐인 대의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한 조조의 리더십이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강(양쯔강)은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이문울 추구하며 개발과 훼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저자는 탄식한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서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할 역사의 교훈(유적)을 소홀히 대하는 행태…생각해 보면 중국만 뭐라고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라고 다를까 싶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저자 허우범 교수가 던지는 탄식과 질문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초심을 잃은 지도자, 무능하고 게으른 리더가 어떤 결과를 불러 오는지 수천 년의 풍상을 이겨낸 희미한 비석문 앞에 서서 질문을 던진다. 한 왕조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제후들은 실상 자기가 패권을 쥐기 위한 암투를 거듭했고 그 결과 위, 촉, 오 이렇게 삼국으로 분열하여 수십 년간 자웅을 겨룬다.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농부들은 군역과 부역, 요역에 시달렸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도 누가 징집되는지 잘 살펴 보자. 소설 삼국지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분쟁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이유가 이닐 수 없다.

*** ***

‘삼국지연의’는 중화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중화 문화의 숨은 칼날이다. 역사와 소설, 사실과 허구로 무장된 카멜레온이 글로벌 시대 전 지구촌을 통째로 중화주의화하기 위한 콘텐츠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급한 민족을 상대로 하는 국지적 전략일 뿐이다. 단지 이야기책이라고 치부하며 등한시하기에는 너무나 깊게 우리 곁에 와 있다. (22쪽)

정치가들은 국가적 안위와 백성이 평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권좌에의 동경과 애착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역사기 이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록하겠노라고 벼려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권자가 역사 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68쪽)

관우가 괄골요독한 것은 사실이고 건안 24년(219년)의 일이다. 하지만 관우를 치료한 의사는 화타가 아니었다. 화타는 건안13년(208년)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는 11년 전에 죽은 화타를 왜 살려냈을까? 그것은 물론 관우의 신격화와 관련이 있다. (196쪽)

이는 풍요로운 농경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온 중국이 그들 스스로가 오랑캐라고 부르며 천시했던 유목 민족에게 국가를 빼앗길 때마다 더욱 열렬하였다. ‘삼국지연의’에는 오랑캐를 몰아내어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나아가 더 넓은 제국을 만들고자하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민족정신 고취의 중심에 관우가 있다. (215쪽)

한 장수의 무모한 전략이 얼마나 많은 병사의 생명을 앗아 가고, 나아가 국가의 명운까지 위태롭게 하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아무리 이론에 박식하고 뛰어나다고 해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면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이러한 교훈을 가정 전투에서 마속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절절하게 배울 수 있다.(358쪽)

유비가 세운 촉한 정권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유비의 수족과도 같은 핵심 세력인 ‘형주파’, 촉 땅 본토에서 세력을 키운 ‘익주파’, 그리고 유장이 다스리는 익주에 몸을 의탁한 세력인 ‘동주파’가 있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며 세력 쌓기에 분주하였다.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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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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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텔레비젼에서 방송해 주던 흑백 서부 영화나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투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카우보이 복장을 입은 주인공이나 주방위군이 활로 대응하는 인디언들을 총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또한 소수의 게리슨 유격대가 수 백명의 독일군 병사들을 제압하는 장면에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조금씩 실체와 진실에 근접해 가면서 악당과 정의의 편을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관총 2개를 들고 베트콩과 월맹군을 향해 난사하는 람보가 마치 우리 편인 양 즐거워했던 그 시절이 무섭기까지 하다.

헐리우드의 연출력은 세계 곳곳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이미지에 찬동하도록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하고 세뇌시켰던 셈이다. 이런 일이 비단 미합중국만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나라라고 칭한 중국은 오히려 신생국인 미합중국보다 먼저 중화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공정을 시도했다. 특히 이런 시도는 한족들이 오랑캐라 칭한 이민족의 침공과 지배를 받을 때에 그 필요가 증대되었다. 그 대표적인 성과물 중의 하나가 명대에 정리(?)한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다. 당시 한족들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 터라 한족을 결속시키고 여러 소수민족들을 굴종시킬 정서적 공감대가 필요했다.

필력과 상상력이 출중했던 이야기꾼이었던 나관중은 정통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를 비롯한 많은 자료와 야사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한족인 유비를 정통으로 하는 촉한정통론을 정립한다. 젊은 시절 철석 같이 사실로 인식했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또한 나관중의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란 것을 알 건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에 읽게 된 허우범 교수의 ‘삼국지 기행 1편’을 통해 제갈량의 신기에 가까운 대부분의 업적 또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나관중의 재주로 창작된 픽션이란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이것조차 픽션이었다고?. 저자는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20여년 동안 직접 답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모았다. 2009년애 초판을 내고 최근에 10여 년만에 다시 재방문을 한 기록들을 기초로 개정판을 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광대한 중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개발로 인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은 훼철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이 되어 그 위치를 아는 자가 없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에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유명한 곳에는 온갖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등 자본에 잠식되어 가는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역사의 교훈을 소홀히 하는 개인은 물론 국가 또한 쇠락을 면하지 못한다는 점.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부지런함과 풍부한 역사 해석은 간만에 풍성한 책읽기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 ***

송원대부터 내려오는 경극을 보면 관우는 항상 얼굴이 붉은색인 반면, 조조의 얼굴은 사악함의 상징인 흰색이다. 이는 색을 통해서 민족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우리가 흰색을 순수와 순결의 상징으로, 붉은색을 악마 또는 사악함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53쪽)

화웅의 목을 벤 사람은 오히려 연의에서 화웅에게 대패한 것으로 기술된 손견의 공적이다. 나관중이 고향 선조인 관우를 드높이기 위해 손견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121쪽)

자의적인 해석과 사소한 것의 과정, 환상과 유언비어를 진실처럼 만드는 거이 중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이고, 그 결정체가 ‘삼국지연의’다. 그리고 ‘삼국지연의’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리 없이 스스로를 또 하나의 역사서인 양 강변하며 오늘도 세계인에게 중화주의를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147쪽)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대적인 중건 작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표지석이 우뚝하다. 이처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이 분명한데도 중국의 동북공정은 압록강변의 단동시 호산산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중국의 역사 왜곡은 비단 ‘삼국지연의’에서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248쪾)

역사는 전설을 몰고 다니고 전설은 때때로 역사를 추월한다. 그리고 신화와 조우한다. 신화는 역사를 부풀리고 인간은 그 역사를 스스로 맹신한다. 그래서 오늘도 ‘위대한’ 역사 만들기에 골몰한다. 역사가 항상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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