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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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손에 잡고 읽게 된 책. 이용순이란 사진가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질 좋은 종이에 흑백 사진과 함께 갇힌 담장 안에서 꾹꾹 눌러쓴 노트 글을 책으로 엮여낸 글을 읽어가다 보니 시나브로 그의 삶과 단상에 어느 순간 공감을 하게 되었다. 본래 저자는 사진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던 사진가였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 그가 모종에 일에 엮이게 되어 많이(!) 억울할 수 있는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일순간에 자유를 제한 받게 된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카메라를 소지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마치 요리사에게서 칼을 빼앗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저자는 구치소-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를 수용하는 곳-를 거쳐 교도소를 경험하게 된다. 몇 겹으로 닫힌 그곳은 수용자(밖에서는 죄수라 부르는)의 육체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마저 통제받게 한다.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통의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리는 그곳의 풍경으로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사진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갇혀 사는 사람들의 일과와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저자는 13권의 노트에 수형 생활 중 마음의 눈으로 찍은 단상을 문자로-짧은 산문과 시편으로- 찍어 두었다. 카메라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을 터. 때문에 독자는 갇힌 자들의 생활 모습과 시간을 죽이는 방법을 제3자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수형 생활에도 적용될 듯. 이등병 때 구백 일 남짓한 군생활을 헤아리다 절망했던 잠 못 이루던 밤의 느낌이 저자의 심정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자유를 속박당하고 죄수복을 입게 된다는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옷을 골라입을 자유도 없고 음식도 선택할 자유가 없는-물론 영치금으로 사식을 구매할 순 있다- 그런 생활은 보통의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에세이다. 아닌 보면 볼수록 묵직하게 눈길을 머물게 하는 사진책이다. 카메라 없이 마음의 사진을 써내려 간 저자의 사진 전시전이 언제 열리는지 궁금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듯 높은 담장 속에 사는 그들에게도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 ***

사진은 분명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 인해서 사진은 거짓이 아닌 참으로써 내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내적 경험은 감정으로써의 경험이며 이는 생각 혹은 사고에 의존한다. 또 이는 외적 경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일 수 있다. 사진은 시일 수 있으며 시는 사진일 수 있다.(29~30쪽)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가라는 이유로 나는 추상의 단어를 시로 쓰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시로 환원시키는 것에 애를 먹는다.(30쪽)

나는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로 가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밝은 세상으로 떠나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세찬 비가 내렸다. 지난 2년 동안의 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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