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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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텔레비젼에서 방송해 주던 흑백 서부 영화나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투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카우보이 복장을 입은 주인공이나 주방위군이 활로 대응하는 인디언들을 총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또한 소수의 게리슨 유격대가 수 백명의 독일군 병사들을 제압하는 장면에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조금씩 실체와 진실에 근접해 가면서 악당과 정의의 편을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관총 2개를 들고 베트콩과 월맹군을 향해 난사하는 람보가 마치 우리 편인 양 즐거워했던 그 시절이 무섭기까지 하다.

헐리우드의 연출력은 세계 곳곳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이미지에 찬동하도록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하고 세뇌시켰던 셈이다. 이런 일이 비단 미합중국만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나라라고 칭한 중국은 오히려 신생국인 미합중국보다 먼저 중화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공정을 시도했다. 특히 이런 시도는 한족들이 오랑캐라 칭한 이민족의 침공과 지배를 받을 때에 그 필요가 증대되었다. 그 대표적인 성과물 중의 하나가 명대에 정리(?)한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다. 당시 한족들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 터라 한족을 결속시키고 여러 소수민족들을 굴종시킬 정서적 공감대가 필요했다.

필력과 상상력이 출중했던 이야기꾼이었던 나관중은 정통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를 비롯한 많은 자료와 야사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한족인 유비를 정통으로 하는 촉한정통론을 정립한다. 젊은 시절 철석 같이 사실로 인식했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또한 나관중의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란 것을 알 건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에 읽게 된 허우범 교수의 ‘삼국지 기행 1편’을 통해 제갈량의 신기에 가까운 대부분의 업적 또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나관중의 재주로 창작된 픽션이란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이것조차 픽션이었다고?. 저자는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20여년 동안 직접 답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모았다. 2009년애 초판을 내고 최근에 10여 년만에 다시 재방문을 한 기록들을 기초로 개정판을 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광대한 중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개발로 인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은 훼철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이 되어 그 위치를 아는 자가 없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에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유명한 곳에는 온갖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등 자본에 잠식되어 가는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역사의 교훈을 소홀히 하는 개인은 물론 국가 또한 쇠락을 면하지 못한다는 점.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부지런함과 풍부한 역사 해석은 간만에 풍성한 책읽기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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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대부터 내려오는 경극을 보면 관우는 항상 얼굴이 붉은색인 반면, 조조의 얼굴은 사악함의 상징인 흰색이다. 이는 색을 통해서 민족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우리가 흰색을 순수와 순결의 상징으로, 붉은색을 악마 또는 사악함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53쪽)

화웅의 목을 벤 사람은 오히려 연의에서 화웅에게 대패한 것으로 기술된 손견의 공적이다. 나관중이 고향 선조인 관우를 드높이기 위해 손견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121쪽)

자의적인 해석과 사소한 것의 과정, 환상과 유언비어를 진실처럼 만드는 거이 중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이고, 그 결정체가 ‘삼국지연의’다. 그리고 ‘삼국지연의’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리 없이 스스로를 또 하나의 역사서인 양 강변하며 오늘도 세계인에게 중화주의를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147쪽)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대적인 중건 작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표지석이 우뚝하다. 이처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이 분명한데도 중국의 동북공정은 압록강변의 단동시 호산산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중국의 역사 왜곡은 비단 ‘삼국지연의’에서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248쪾)

역사는 전설을 몰고 다니고 전설은 때때로 역사를 추월한다. 그리고 신화와 조우한다. 신화는 역사를 부풀리고 인간은 그 역사를 스스로 맹신한다. 그래서 오늘도 ‘위대한’ 역사 만들기에 골몰한다. 역사가 항상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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