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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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할 때 범우사에서 출간한 나관중판 완역 삼국지 5권을 독파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소설 삼국지는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편역과 재해석을 해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원말 명초를 살았던 뛰어난 통속 소설가였던 나관중의 영향력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이는 청대에 삼국지 연의를 120회분으로 정리한 모종강의 모본에도 마찬가지다. 나관중과 모종강은 유비를 존중하고 조조를 비하하는 당시 사람들의 성정을 소설 속에 공고히 했다. 그 영향으로 중화의 영향권에 있던 나라 사람들은 촉한정통론에 동조되었고 유비와 관우, 제갈량의 팬클럽 회원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 머리에 고착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들이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내보내는 것과 언론들이 특정 사건이나 인물들을 융단 폭격하듯 다루는 것 또한 이 점을 노린 것 아닐까 싶다. 조조에 대한 인식은 사람 보는 눈은 있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만 교활하고 야비하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역대 중국 왕조와 지배세력들은 한족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촉한 정통론을 내세웠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또한 중원의 한족들의 환심을 사고 내부 결속을 위해 소설 삼국지연의를 적극 활용했다. 모종강이 나관중의 소설을 다시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허우범 교수는 말한다. 10여년 만에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다시 찾아가 보니 바뀐 정서가 느껴졌다는 거다.

가장 큰 변화는 간웅이란 이미지에 묶여 있던 조조에 대한 평가와 인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려졌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개방과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세태 가운데 허울 뿐인 대의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한 조조의 리더십이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강(양쯔강)은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이문울 추구하며 개발과 훼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저자는 탄식한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서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할 역사의 교훈(유적)을 소홀히 대하는 행태…생각해 보면 중국만 뭐라고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라고 다를까 싶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저자 허우범 교수가 던지는 탄식과 질문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초심을 잃은 지도자, 무능하고 게으른 리더가 어떤 결과를 불러 오는지 수천 년의 풍상을 이겨낸 희미한 비석문 앞에 서서 질문을 던진다. 한 왕조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제후들은 실상 자기가 패권을 쥐기 위한 암투를 거듭했고 그 결과 위, 촉, 오 이렇게 삼국으로 분열하여 수십 년간 자웅을 겨룬다.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농부들은 군역과 부역, 요역에 시달렸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도 누가 징집되는지 잘 살펴 보자. 소설 삼국지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분쟁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이유가 이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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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중화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중화 문화의 숨은 칼날이다. 역사와 소설, 사실과 허구로 무장된 카멜레온이 글로벌 시대 전 지구촌을 통째로 중화주의화하기 위한 콘텐츠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급한 민족을 상대로 하는 국지적 전략일 뿐이다. 단지 이야기책이라고 치부하며 등한시하기에는 너무나 깊게 우리 곁에 와 있다. (22쪽)

정치가들은 국가적 안위와 백성이 평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권좌에의 동경과 애착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역사기 이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록하겠노라고 벼려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권자가 역사 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68쪽)

관우가 괄골요독한 것은 사실이고 건안 24년(219년)의 일이다. 하지만 관우를 치료한 의사는 화타가 아니었다. 화타는 건안13년(208년)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는 11년 전에 죽은 화타를 왜 살려냈을까? 그것은 물론 관우의 신격화와 관련이 있다. (196쪽)

이는 풍요로운 농경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온 중국이 그들 스스로가 오랑캐라고 부르며 천시했던 유목 민족에게 국가를 빼앗길 때마다 더욱 열렬하였다. ‘삼국지연의’에는 오랑캐를 몰아내어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나아가 더 넓은 제국을 만들고자하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민족정신 고취의 중심에 관우가 있다. (215쪽)

한 장수의 무모한 전략이 얼마나 많은 병사의 생명을 앗아 가고, 나아가 국가의 명운까지 위태롭게 하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아무리 이론에 박식하고 뛰어나다고 해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면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이러한 교훈을 가정 전투에서 마속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절절하게 배울 수 있다.(358쪽)

유비가 세운 촉한 정권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유비의 수족과도 같은 핵심 세력인 ‘형주파’, 촉 땅 본토에서 세력을 키운 ‘익주파’, 그리고 유장이 다스리는 익주에 몸을 의탁한 세력인 ‘동주파’가 있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며 세력 쌓기에 분주하였다.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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