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오렐리아 블랑 지음, 허원 옮김 / 브.레드(b.read)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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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이 제목에도 나름의 정서적 억압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다. 부모가 자녀의 정체성을 자신의 성향을 따라 규정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모로서 자녀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세상과 이웃들에게 이로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관과 정체성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대와 국가별로, 지형과 문화, 경제적 배경에 따라 이 기준은 변화해 왔다.

최근 아무개 편의점의 이벤트 홍보 포스터 도안과 문구가 논란이 되었다. 평소 일상에 매여 살다보니 남혐, 여혐 단체와 활동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근자에 이르러 남성 중심사회에서 양성 평등 사회로 전환을 위한 여러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상과 의식 깊이 스며든 남성 중심사고는 여전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에 강성을 띤 여성 단체들이 등장하고, 홈페이지나 카페 등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그동안 차별받던 여성 지위를 동등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배척과 혐오를 통한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아쉽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일방에게 유리한 관계 설정은 과거의 유산으로 박제시켜야 하겠다. 프랑스의 언론인 오렐리아 블랑이 쓴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는 현재진행형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차별과 차이 가운데 살고 있다.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 인종의 차이는 현실적인 차별과 유리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저자는 묵묵히 적어 낸다.

책을 읽으면서 인권의 나라로 인식된 프랑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위력을 사용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인지상정이란 것을. 그럼에도 이성과 지성을 가진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남아를 선호했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역할을 구분하는 문화적 경계도 낮아졌다.

저자가 경계하듯 인간이 이성과 지성의 힘으로 다시 기어 오르려는 본능-나의 유익과 쾌락을 위해 다른 약자를 착취하려는-을 억제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암담하다. 때문에 부단한 교육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격 훈련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어서 학교 교육과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양성 평등이란 구호가 아닌 인간 존중이 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적 운동이나 캠페인 차원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배려)하는 기본기를 장착해야 한다. 이것이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 아닐까 한다.




남자들에게 섬세함을 버리라고 명령하던 구시대의 남자다움 도식은 소년의 감성을 희생하고 지배 정서를 강화했다. 이는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토대가 되기에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다. 구시대의 성차별적 교육과 반대 입장을 취하려면 일단 교육의 지향을 바꿔야 한다.
(134p)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은 씩씩하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압에서 그들을 해방해 준다. 성별이라는 굴레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성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압박 따위는 잊고, 이들은 훨씬 유연하고 부드러운 남성성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여성을 비하하지 않아도 당당하고 굳건한 남성성, 결국엔 진정 평등한 세상을 이루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그런 남성성 말이다.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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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웨스 앤더슨 - 그와 함께 여행하면 온 세상이 영화가 된다
월리 코발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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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것이 꺼려지는 책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바쁜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 책 머리말은 이렇게 자신있게 시작한다. ‘이것은 모험이다’. ‘일단 보면 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된 사진이지만 그곳의 빛과 바람, 빈 곳이지만 웅성임이 들리는 듯하다.

지구 곳곳의 사진을 대륙별로 선별해서 수록하고, 이름과 장소, 지어진 연도, 사진작가 이름 밑에 상세한 설명과 에피소드를 적어 두었다. 나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소되면 배낭 메고 찾아갈 포인트를 찍어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시아 지역의 사진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특히 눈길을 떼지 못한 사진 2컷이 있다. 하나는 홍콩 초이홍 공공주택단지 전경(284p)이다. 1963년에 지은 서민 아파트로 4만3천명을 수용한다. 좁은 땅에 인구 밀도가 높다보니 그 반세기 훨씬 이전에 생각보다 아름다운, 그러나 고밀도 건축을 해낸 것이다.

건축물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인생사가 보인다고 했던가. 그저 시세차익의 수단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떠받쳐 주는 따뜻한 공간으로 집이 그 역할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두번째 사진은 만경대 소년궁전(316p)이다. 북한 평양에 1989년경에 세워졌다. 북한의 전 주석 김일성은 ‘어린이들은 나라의 왕’이라 선언하고 전국에 소년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교육과 국가 시책을 선전하고 공연을 한다. 사진은 커다란 무대 앞에 한 소녀가 서 있고 그 뒤에 광활한 붉은 막이 가로막고 있다. 마치 쓰나미 앞에 선 나룻배 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니 우리 시대를 가로막은 그 무엇, 뭉클한 것이 안구를 지나 가슴을 저민다.

사진 한 장으로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여러 말과 무수한 활자가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그것을 사진은 조용히, 그러나 강렬한 파장의 가시광선으로 주입시킨다. 영화 감독 웨스 웬더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와 사물들을 찍은 것’이라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처럼 시간과 일정에 쫓겨서 진득하게 그곳을 주목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이 책 ‘우연히, 웨스 앤더슨’을 추천한다. 어떤 곳을 차분하게, 밑바닥부터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싶다면 말이다.

******
1970년대 오스트리아의 미래 전력은 세 곳의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듯했다. 1978년 11월, 직원 수백 명이 곧 문을 열 가장 웅장한 츠벤덴도르프 발전소에서 가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설 기간, 대중의 격렬한 항의 때문에 실시된 최후의 국민 투표에서 오스트리아 국민 50.47퍼센트가 원자력 발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10억 달러짜리 시설은 즉각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은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1970년대 발전소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열려 있다. 원자로 스위치가 눌리지 않은 채 말이다. 대중의 저항이 지닌 힘이야말로 이곳의 가장 의미심장한 전시물이다.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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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세계사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김진연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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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만에 세계사 책을 잡았다. 제목에 이끌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세상 친절한’ 세계사였다. 일주일 동안 자투리 시간을 쏟아 부었다. 방대한 역사를 350쪽 정도에 담아내는 일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점 또한 분명하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흐름과 맥락을 잡아준다. 이 책에서 한 줄 또는 한 단어로 설명한 부분은 다른 자료를 이용해서 보충했다. 일테면 269쪽에서 소개한 보어전쟁 파트를 읽고서 너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 보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지하자원-금, 다이아몬드-을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들의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원주민인 흑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백인 위주의 역사 기술에는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동양인의 시각으로 저술되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1942년생이다. 사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을 잘못된 세계 정세 판단의 결과로 보았다.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청과 조선은 열강의 먹잇감이 되었지만, 일본은 명치 유신으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진짜 제국주의를 실행했다. 조선은 대한제국을 대외에 선포했지만 허울뿐이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바다를 통한 불공정(!) 무역으로 가격혁명과 산업 혁명을 한 서구 열강은 새로운 원료 공급과 값싼 노동력, 시장 확보를 위해 필사적인 경쟁을 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먼저 패권 전쟁을 마친 그들은 멀리 태평양 너머 아시아까지 넘봤다.
(저자는 기후변화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세계사의 변곡점이 되는 것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종교나 문화를 활용하는 것은 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한반도와 중동, 베트남, 동유럽 등지에서 국지적인 전쟁이 계속되었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은 냉전시대의 이념 전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걸프전 등은 이념보다는 석유 자원 확보가 우선인 명분이 약한 전쟁이었다. 그렇지만 강대국의 경제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속내는 그럴 것이다. 아무렴 어때. 내가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이것은 마치 원시 시대부터 이어오는 약탈 경제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돈 때문에 배신과 살인조차 주저하지 않는 세태를 보면 어쩌면 개인이나 국가나 도긴개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포고복을 바라는 육신의 본능에만 머물러 있고 싶진 않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본능을 뛰어 넘는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선생이 단권으로 서술한 세계사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긴장하지 않고 힘을 기르지 않은 개인이나 국가는 강한 자에게 침탈을 당한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반 세기를 살아보니 이 말을 실감하고 인정한다. 선거 때마다 선량이 되기 위해 공약을 내세우지만 정작 대중들은 잊고 만다. 한국 영화 ‘내부자들’은 냉혹하고 비정한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개와 돼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저들이 행한 일과 내뱉은 말을 기억해야 한다. 저들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도록 두 눈 부릎뜨고 있어야 한다.  한국사나 세계사나 인간 사는 군상과 행태는 비슷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서가에 두었다가 잊을만하면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기마유목민의 활약은 7세기에 비잔티움 제국, 사산 왕조를 무너뜨리고 지중해 및 대건조지대를 통합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유목민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그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은 그때까지 세계사에 없었던 유라시아 규모의 거대한 제국(유라시아 제국)으로 성장했다.
이후 유라시아 제국은 아랍인->터키인->몽골인으로 주역을 바꿔가며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7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이 점에 주목하여 기마유목민에 의한 유라시아 제국시대를 ‘유목민 폭발 시대’라 명명했다. (117p)

<1초 리뷰>
세계사는 연동되어 움직인다. 이슬람 세력의 지중해 정복이 서유럽 세계 형성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유럽 중심의 서양사는 이러한 관계를 간과하고 있다.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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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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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골 농촌 출신들은 곤충과 유충, 벌레를 자연스레 보면서 성장했다. 작물에 해가 되면 손으로 잡기도 하고, 농약을 쳤다. 이제는 다수가 도시 속 공동주택에 사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 같이 초여름 밤 풀벌레 소리와 모깃불을 켜고 살던 시절이 아니다.  한집에 살지만  중년과 청년 세대간 인식의 차이는 분명하다. 책과 영상으로 접한 자연과 직접 몸의 오감으로 느낀 것의 차이가 아닐까?

간만에 표지를 보고 충동적으로 읽은 책이다. ‘충선생’. 곤충을 선생이라 칭했다. 이건 뭔가 있겠다 싶었다. 저자 곽정식 선생은 곤충학자가 아니다. 정치학, 경영학을 전공하고 35년간 기업과 국제 기구에서 근무하면서도 자연과 인간, 인문학에 대한 통찰을 연마하였다.

저자는 우리 일상 주변에서 흔히 보는 파리, 모기부터,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쇠똥구리까지 모두 21종의 충선생을 소개한다. 모기가 선생이라니 싶었다. 그런데 본문을 읽다보니 왜 암컷 모기가 목숨을 걸고 채혈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작금의 인간 군상의 소식을 듣다 보면 부모 자식 간의 분쟁도 드물지 않다.  벌레만 못한 인간이란 말이 있다.  모기나 파리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도 분명 생태계에서 당당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나의 편리를 위해 박멸해도  괜찮은 존재는 없다.

충선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곤충의 생태와 습성을 설명해 준다.  유소년 시절에 농촌에서 지낸 독자라면 저자의 설명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동서양의 인문학적 통찰을 풀어낸다. 사마귀와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 대목(104p)에서 숨이 멎는 듯했다. 짝짓기를 하면서 암사마귀는 수컷을 잡아 먹는다. 번식을 위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저자는 인간에도 이런 면이 있음을 마키아벨리의 글을 통해서 설명한다. 사람은 부모의 죽음은 쉽게 잊지만 자기 소유에 손실이 생기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서운 상사에게는 잘하지만,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사마귀는 본능으로 행동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은 육체의 본능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서글픈 이야기도 있다. 예전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던 쇠똥구리를 이제는 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는 소를 들판에서 풀을 뜯기며 키웠다. 그러나 지금은 콘크리트 축사에서 대량생산된 사료를 먹여 사육을 한다. 쇠똥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졌다. 그런데 저자는 호주에서  환경 문제를 쇠똥구리를 이용해서 해결한 사례(94p)를 소개한다. 광활한 초지에 방목한 소가 눈 똥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주 정부는 비슷한 환경을 갖은 남아프리카의 쇠똥구리를 수입한다. 사람-소-소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은 쇠똥구리였다.

2년차에 접어든 코비드19는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인간의 발걸음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해외 여행이 중단되었고, 북적이던 관광지 자연환경이 개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서 기후변화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현안과제가 되고 있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3배라고 한다. 그들은 화력과 원자력 발전을 멈추는 것을 목표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망가진 자연 생태계가 복원하는 것이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임을 ‘충선생’은 묵묵히 말해 준다.
 
 
“우리 쌀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메뚜기가 사는 논에서 생산되었습니다.”라는 농부의 외침은 메뚜기와의 종전 선언인 동시에 공존 선언이었다. 인간과 메뚜기가 같이 먹고 사는 공생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세상은 자연과 공존했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215p)

우주와 같은 인간의 몸을 보는 의사는 뱀처럼 차갑고 냉정해야 한다. 적당히 해서도 안 되고 들떠 있어서도 안 된다. 들떠 있으면 눈앞에 있는 열쇠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매일 대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한결같은 차가움을 유지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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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
김선영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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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포털에 뜨는 신문기사를 거르게 되었다.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열을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기사는 덤이다. ‘한강시민공원 쓰레기 분리수거, 시민 의식 실종’ 류의 기사가 그렇다. 언제가 어떤 글을 보니 신문사들이 인력을 줄일 때 교열 전문기자 자리를 없앴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몰라도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비문이 난무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터넷 서핑은 줄이고, 대신 책을 읽는 시간을 점차 늘리려 노력한다.

그런데 좋을 글을 읽는 것과 내가 직접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꽃편지는 아니지만 키보드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일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SNS와 이메일 등 거의 매일 글을 쓴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개인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무튼 글을 자주, 많이 쓰기는 하지만 과연 내가 ‘좋은 글’을 쓰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학창 시절 이후에는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 읽은 ‘나도 헌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깔맞춤 책이다. 방송작가 출신인 저자 김선영은 현재 글쓰기 코치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요즘 대세인 온라인 글쓰기를 코칭한다. 이 책도 글쓰기 체력과 역량을 훈련시켜 줄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먼저 1장은 준비운동을 하게 돕는다. 현재 나의 낱말 숙지와 문장력을 자가 점검한다. 이 단계에서 글쓰기에도 적극적인 맞춤형 훈련이 필요함을 체감할 수 있다. 2장에선 기초 체력을 기른다. 좋은 글을 필사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훈련을 해야 한다.

3장에선 조금 더 세분화된 글쓰기를 조언해 준다. 마치 키우고 싶은 근육별로 은동을 하는 것처럼. 공감가는 글을 쓰는 요령 등을 연습한다. 4장에서는 섬세함을 더해 주는 연습을 한다. 이제는 수정과 탈고의 과정을 통해서 글에 군더더기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저자는 이태준 선생의 명저 ‘문장강화’를 인용하여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탈고와 교열 작업을 강조한다. 마지막 5장에선 글쓰기 훈련을 통해 단련된 실력을 여러 매체를 활용하여 적용할 것을 권한다. 아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생각을 글로 드러내 보라고 저자는 강력히 어필한다.

하루 15분씩 3주를 투자해 보라. 이 책을 매뉴얼 삼아서.

이태 전 겨울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가 눈길을 끌었다. 비시즌 중에 체력과 기술 연마는 물론 계약 협상 등을 잘 마친 선수들이 괄목한 성과를 일구는 내용이 감동을 주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다. 글쓰기의 근육과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 없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쓰기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독자를 글쓰기 훈련장에 이끄는 이 책은 연습용 노트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구경꾼에 머물지 말고 직접 자기 운동을 시작하도록 동기 부여를 한다.



문장을 고칠 때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바꾸기’도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곤 하므로 빼기에 가깝습니다. 탁월한 문장가 이태준 선생은 <문장강화>에서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일이 바로 고쳐 쓰기인 셈입니다.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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