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웨스 앤더슨 - 그와 함께 여행하면 온 세상이 영화가 된다
월리 코발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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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것이 꺼려지는 책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바쁜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 책 머리말은 이렇게 자신있게 시작한다. ‘이것은 모험이다’. ‘일단 보면 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된 사진이지만 그곳의 빛과 바람, 빈 곳이지만 웅성임이 들리는 듯하다.

지구 곳곳의 사진을 대륙별로 선별해서 수록하고, 이름과 장소, 지어진 연도, 사진작가 이름 밑에 상세한 설명과 에피소드를 적어 두었다. 나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소되면 배낭 메고 찾아갈 포인트를 찍어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시아 지역의 사진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특히 눈길을 떼지 못한 사진 2컷이 있다. 하나는 홍콩 초이홍 공공주택단지 전경(284p)이다. 1963년에 지은 서민 아파트로 4만3천명을 수용한다. 좁은 땅에 인구 밀도가 높다보니 그 반세기 훨씬 이전에 생각보다 아름다운, 그러나 고밀도 건축을 해낸 것이다.

건축물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인생사가 보인다고 했던가. 그저 시세차익의 수단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떠받쳐 주는 따뜻한 공간으로 집이 그 역할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두번째 사진은 만경대 소년궁전(316p)이다. 북한 평양에 1989년경에 세워졌다. 북한의 전 주석 김일성은 ‘어린이들은 나라의 왕’이라 선언하고 전국에 소년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교육과 국가 시책을 선전하고 공연을 한다. 사진은 커다란 무대 앞에 한 소녀가 서 있고 그 뒤에 광활한 붉은 막이 가로막고 있다. 마치 쓰나미 앞에 선 나룻배 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니 우리 시대를 가로막은 그 무엇, 뭉클한 것이 안구를 지나 가슴을 저민다.

사진 한 장으로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여러 말과 무수한 활자가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그것을 사진은 조용히, 그러나 강렬한 파장의 가시광선으로 주입시킨다. 영화 감독 웨스 웬더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와 사물들을 찍은 것’이라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처럼 시간과 일정에 쫓겨서 진득하게 그곳을 주목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이 책 ‘우연히, 웨스 앤더슨’을 추천한다. 어떤 곳을 차분하게, 밑바닥부터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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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스트리아의 미래 전력은 세 곳의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듯했다. 1978년 11월, 직원 수백 명이 곧 문을 열 가장 웅장한 츠벤덴도르프 발전소에서 가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설 기간, 대중의 격렬한 항의 때문에 실시된 최후의 국민 투표에서 오스트리아 국민 50.47퍼센트가 원자력 발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10억 달러짜리 시설은 즉각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은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1970년대 발전소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열려 있다. 원자로 스위치가 눌리지 않은 채 말이다. 대중의 저항이 지닌 힘이야말로 이곳의 가장 의미심장한 전시물이다.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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