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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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골 농촌 출신들은 곤충과 유충, 벌레를 자연스레 보면서 성장했다. 작물에 해가 되면 손으로 잡기도 하고, 농약을 쳤다. 이제는 다수가 도시 속 공동주택에 사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 같이 초여름 밤 풀벌레 소리와 모깃불을 켜고 살던 시절이 아니다.  한집에 살지만  중년과 청년 세대간 인식의 차이는 분명하다. 책과 영상으로 접한 자연과 직접 몸의 오감으로 느낀 것의 차이가 아닐까?

간만에 표지를 보고 충동적으로 읽은 책이다. ‘충선생’. 곤충을 선생이라 칭했다. 이건 뭔가 있겠다 싶었다. 저자 곽정식 선생은 곤충학자가 아니다. 정치학, 경영학을 전공하고 35년간 기업과 국제 기구에서 근무하면서도 자연과 인간, 인문학에 대한 통찰을 연마하였다.

저자는 우리 일상 주변에서 흔히 보는 파리, 모기부터,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쇠똥구리까지 모두 21종의 충선생을 소개한다. 모기가 선생이라니 싶었다. 그런데 본문을 읽다보니 왜 암컷 모기가 목숨을 걸고 채혈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작금의 인간 군상의 소식을 듣다 보면 부모 자식 간의 분쟁도 드물지 않다.  벌레만 못한 인간이란 말이 있다.  모기나 파리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도 분명 생태계에서 당당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나의 편리를 위해 박멸해도  괜찮은 존재는 없다.

충선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곤충의 생태와 습성을 설명해 준다.  유소년 시절에 농촌에서 지낸 독자라면 저자의 설명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동서양의 인문학적 통찰을 풀어낸다. 사마귀와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 대목(104p)에서 숨이 멎는 듯했다. 짝짓기를 하면서 암사마귀는 수컷을 잡아 먹는다. 번식을 위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저자는 인간에도 이런 면이 있음을 마키아벨리의 글을 통해서 설명한다. 사람은 부모의 죽음은 쉽게 잊지만 자기 소유에 손실이 생기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서운 상사에게는 잘하지만,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사마귀는 본능으로 행동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은 육체의 본능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서글픈 이야기도 있다. 예전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던 쇠똥구리를 이제는 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는 소를 들판에서 풀을 뜯기며 키웠다. 그러나 지금은 콘크리트 축사에서 대량생산된 사료를 먹여 사육을 한다. 쇠똥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졌다. 그런데 저자는 호주에서  환경 문제를 쇠똥구리를 이용해서 해결한 사례(94p)를 소개한다. 광활한 초지에 방목한 소가 눈 똥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주 정부는 비슷한 환경을 갖은 남아프리카의 쇠똥구리를 수입한다. 사람-소-소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은 쇠똥구리였다.

2년차에 접어든 코비드19는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인간의 발걸음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해외 여행이 중단되었고, 북적이던 관광지 자연환경이 개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서 기후변화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현안과제가 되고 있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3배라고 한다. 그들은 화력과 원자력 발전을 멈추는 것을 목표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망가진 자연 생태계가 복원하는 것이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임을 ‘충선생’은 묵묵히 말해 준다.
 
 
“우리 쌀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메뚜기가 사는 논에서 생산되었습니다.”라는 농부의 외침은 메뚜기와의 종전 선언인 동시에 공존 선언이었다. 인간과 메뚜기가 같이 먹고 사는 공생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세상은 자연과 공존했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215p)

우주와 같은 인간의 몸을 보는 의사는 뱀처럼 차갑고 냉정해야 한다. 적당히 해서도 안 되고 들떠 있어서도 안 된다. 들떠 있으면 눈앞에 있는 열쇠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매일 대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한결같은 차가움을 유지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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