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탄식이 들려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와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의 입신과 영달보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진정한 어른을 우리 사회는 보유하고 있는가? 이런 발칙한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지난 여름 올림픽 때 에스엔에스에서는 김연경 보유국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역을 넓혀 우리의 의식 수준과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스승과 지도자를 우리는 갖고 있는가? 아니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

모두의 당돌한 질문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됨을 고백한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있는 사실이나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연구한 노학자, 이제는 암과 동행(?)하며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이어령 선생 이야기다. 그를 소개하는 글은 한 페이지로 부족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그의 책 중에 읽었던 것들이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더 많은 독서였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선생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좋은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에서 인간은 지성과 문명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늙었고 병들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에게 관록의 기자가 매주 찾아가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대답이 마치 칼과 창이 부딪히는 것처럼 날이 시퍼렇다. 이어령을 말한다. 평생 질문하는 삶을 살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국가나 사회, 학교, 종교 집단의 가르침을 별다른 의심없이 수용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탈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난함을 거부하고 왜 그러한가 질문하고 파고 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생각과 인식의 차이가 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질문받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가 있다. 권력이나 부를 선점하고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인류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감염병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전지구적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멈춰서서 질문해야 한다.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자연환경은 물론 인간 관계 또한 파괴한 과오에서 돌이켜야 한다. 과학 기술 개발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에 대해 사유하는 인문학에 공을 들여야 한다. 노학자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16편의 인터뷰는 강렬한 울림이 있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만만한 사람이 된다. 질문하지 않고 왜 그런지 따지지 않는 사람을 예로부터 지배층들은 선호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뒤늦게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내기 위해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는데 익숙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제 성장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다양성과 토론을 존중하는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어령 선생의 강의는 묵직하게 도전한다. 예전에 함석헌 선생이 일갈한 것처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경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바라기는 이어령 선생이 건강을 회복하여 마지막 수업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 ****

"재미있지. 배꼽을 만져보게. 몸의 중심에 있어. 그런데 비어 있는 중심이거든. 배꼽은 내가 타인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물이지. 지금은 막혀 있지만 과거엔 뚫려 있었지 않나. 타인의 몸과 내가 하나였다는 것,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같은 튜브를 타고 있었다는 것. 배꼽은 그 진실의 흔적이라네." p 39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p 2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글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기자가 대표적인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일간, 주간, 월간, 격월간 또는 무크지 형태의 신문이나 잡지, 방송사, 기업의 홍보실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기록하는 사람들이란 낱말의 뜻에 걸맞게 매순간 정확하고 신속한-어쩌면 이율배반적인- 사실 전달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의 특성상 굳이 현장으로 가지 않아도 일정 분량의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비용 절감을 위해 통신사 자료만으로 작업하고 송고하는 경우 적지 않은 모양이다.

2014년 4월. 뉴욕 맨해튼 아파트 붕괴 사고 때 뉴욕타임스의 낙종 사고가 화제가 되었다.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고 취재 인력을 20명이나 파견했음에도 속보 경쟁에서 경쟁사에 밀리고 말았다. 정확히 확인된 사실만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한다. 재난 현장에서 속보 경쟁은 구호 활동을 방해하기도 하고 피해자의 인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보 전달로 인한 피해는 회복하기가 어렵다. 2016년 세월호 침몰 당시 지역 방송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 본사에서 ‘전원 구조’라는 방송을 강행하는 대형 오보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진실 확인에 방점을 찍지 않은 속보 또는 단독 보도 경쟁은 저널리즘을 손상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독자가 관심을 갖고 열독할 수 있도록 몰입감 있는 글을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하더라도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면 언론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잭 하트의 ‘퓰리처 글쓰기 수업’은 한마디로 말해 평범한 소재를 갖고서도 독자가 몰입하고 열광하며 익는 글쓰기 방법을 다룬다. 다만 이것은 비법은 아니다. 글쓰기의 기본기를 13장에 걸쳐서 수련하도록 이끌어 준다.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헬스장에 가서 개인 지도를 받았다고 바로 몸짱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부단히 자신의 관점이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 말 잘하고, 글 잘쓰는 데도 왕도는 없다. 좋은 코치가 있을 뿐,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저자 잭 하트는 글쓰기 코칭을 하면서 모은 자료와 경험,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내러티브 논픽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거기에 스토리를 부여하여 독자가 보다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발단-상승-위기-절정-하강의 5단계를 거치는데 독자가 긴장감을 갖고 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유려한 문장력을 요구하기 보다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잘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취재와 사실 확인을 거친 검증된 정보여야 한다.

마지막 14장에서 저자는 ‘윤리의식’을 다룬다. 기자나 역사가는 진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보아왔다. 국익이나 기업,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널리즘이 훼손되는 것을 방관하기도 한다. 특히 대선을 앞둔 우리 언론들은 저마다 정론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안에 따라 이해 관계를 저울질하는 모습이 필부의 눈에도 쉽게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윤리적으로 취재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진실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우리 사회에도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기자와 깨어있는 독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부터 깨독-깨어 있는 독자-이 되어야 한다.

*** ***

스토리는 여행과 같다. 여행은 지루할 때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울 때도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시속 이렇다 할 특징 없는 평야를 종일 달리면 지겨워 미칠 지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며 수시로 차를 세우고 예스러운 마을을 둘러본다면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스토리를 살릴 만한 흥미로운 대목을 많이 넣어 독자가 그 부분을 빠르게 읽도록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226p)

우리는 논픽션 내러티브를 읽으며 세상을 이해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인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여줌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을 알려줄 때 우리는 그 힘을 실감한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것은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인간의 공통된 경험을 정의하는 어떤 패턴을 찾아내겠다는 정직한 노력, 여기에 수반되는 온갖 수고와 좌절, 우여곡절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윤리적으로 취재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의 힘에 있다. (44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화의 음모 : 반화
공도성 지음 / 이야기연구원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을 지배하던 무성한 참나무와 느티나무 잎사귀가 벌겋게 물들더니 추적거리는 가랑비와 서늘한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을 보며 나이 먹어감을 생각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를 부인하는-양분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잎사귀를 희생시키는-나무들처럼 나는 인생 석양길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왠지 옷깃을 세우고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할 것 같은 늦가을 오후에 작고 무거운 책 한 권을 만났다.

모두 6권으로 이뤄진 우화의 음모. 그 첫번째 책. 반화. 작은 크기의 양장본에 뺴곡하게 저자 공도성의 눈으로 읽어낸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각 나라와 작가의 우화가 소개된다. 안데르센과 그림형제, 이솝의 글들. 그리스, 독일, 메소포타미아, 미얀마와 이집트 등에서 구전되고 창작된 우화를 먼저 소개하고 각 장의 말미에 저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책 제목에 쓰인 반화(反話)란 단어가 생소해서 국어사전을 검색해 봤다. 나오지 않는다. 책 뒤에 부록으로 이야기 사전이 있다. 거기에서 저자는 반화를 이야기 원형의 기준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반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야기의 원형은 또 무엇인가? 저자는 기독교의 성경의 내용과 목적에 반하지 않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탄의 교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거나 알 것 같은 재미있는 우화가 사실은 사탄이 인간을 교묘히 속이기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논리의 비약이 심한 부분도 곧잘 있어서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와 설명의 부족을 느끼기도 했다. 구약 성경과 고대 근동의 문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를 거짓 종교라고 주장하는데 근거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저자는 사탄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우화를 이용했고,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 어느 것을 선택하든 하나님의 의와 구원에서 빗나가게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지만 수천년간 검증을 거쳐온 전통과 상식에 충돌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다 정합적인 설명이 뒷받침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4백개가 넘는 우화를 분석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해석해 내는 시도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불완전한 형상, 그러니까 거짓 형상을 의(義)나 이치(理致)보다 먼저 접하게 되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통해서 더 쉽게 자긍심을 키우게 된다. 이렇게 거짓 형상과 일체화가 된 후에 만나게 되는 의나 이치는 더 쉽게 거짓 형상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짓 형상에 속는 결과가 바로 사탄이 의도하는 것이다. (31p)

많은 신화에서는 인간의 영생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 자연적인 규칙과도 같은 것으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언급하고 구원을 통해서 인간의 완전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는 신화는 아마도 성경이 유일할 것이다. (32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 질병, 전쟁 : 미생물이 만든 역사 -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아주 작은 생물
김응빈 지음 / 교보문고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나브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계에 퍼지기 시작한지 2년이 다 되었다.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두려워하고, 싫어하지만(?) 사실 지구의 터줏대감은 인간이란 종이 아니라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세균과는 다르다. 인류가 자연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바이러스와 세균 등 미생물들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인 미생물은, 그러나 존재감은 매우 크다.

비약적인 과학과 생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생물에 대한 이해와 발견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라고 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종류가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미생물이다. 현대 생물학에서 미생물을 발견하고 종을 분류한 것은 그중의 1% 수준이라 한다. 그만큼 인간이 미생물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인간은 지구 대기권 밖 우주 공간에 대한 여행을 시작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인체는 물론 자연계 곳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길은 멀기만 하다.

다만 분명한 점은 미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도 끝난다는 사실이다. 미생물은 인간과 지구에서 공존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바퀴벌레나 모기 등을 해충 또는 혐오스럽게 생각하며 박멸_모조리 잡아 없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멸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인류는 미생물과 곤충 등을 인간의 이해 관계에 따라 ‘유익’과 ‘해익’으로 나누고 있다. 바퀴벌레가 없어진다면 지구는 거대한 시체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고 한다. 미생물을 비롯한 작은 곤충들의 사체를 바퀴벌레가 먹어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신간 ‘술, 질병, 전쟁 : 미생물이 만든 역사’는 10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에게 술이라는 마법의 선물을 안겨준 것도 발효를 촉진시켜 주는 미생물들의 활약 때문이다. 인간이 대륙간 이동을 하면서 함께 따라간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들은 치명적인 감염병을 일으켰다. 면역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전쟁이 아닌 감염병으로 먼저 쓰러져 나간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선주민-원주민이 아닌-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정복자의 충과 대포보다 그들의 옮겨온 세균으로 인한 질병에 대부분 절명했다고 한다.

영악한 인류는 미생물학의 성과를 질병 치료 뿐만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물학 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탄저균을 이용한 공격이다.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매독균의 전파 경로가 전쟁의 영역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또한 질병 치료의 획기적 전환점이 된 페니실린도 실상은 곰팡이라는 것 또한 신선하다. 요즘 지나친(?) 위생 관념 때문에 곰팡이 제거, 해충-인간의 관점에서는- 박멸 등 거친 표현이 자주 쓰인다. 저자는 미생물과 인간은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 몰랐던 분야지만 역사 속에서 열일을 한 미생물이란 색다른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 *****
콜레라는 불평등의 짊병이다. 이 고대 감염병은 오늘날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만 병들게 해 죽음으로 내몬다. 콜레라 발생 지도와 빈곤 지도는 거의 일치한다. 21세기 인류는 콜레라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과학적 역량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74p)

인간이 전쟁을 벌이면 미생물은 신이 난다. 새로운 서식지 개척, 즉 감염 기회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생긴 상처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저하된 면역 기능은 성을 에워싼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격이다. 현대 미생물학이 태동할 무렵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의사와 미생물학자들은 이런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133p)

팬데믹 병원체나 발병 시기는 예측 불가하다. 우선 감염병에 대한 상시 감시 체계와 함께 사람 간 전파 차단을 위한 비약물적 개입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그 통제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나아가서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위한 긴밀하고 지속적인 글로벌 공동 연구 체계를 구축해야마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15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교회사 걷기 - 한민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과 공력을 들여서 역사를 읽고 해석하는 이유는 뭘까? 국가든 개인이든 과거의 경험에서 현재에 적용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 기록을 탐독과 분석하면서 동시대의 현안과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역사는 사실-진실 여부와 상관 없이-의 기록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기록한 사관의 해석-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역사를 읽는 사람은 글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기록 당시의 여러 정황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사는 일반적인 역사에 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국사는 통상 국가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1차 사료를 기록, 보관, 편찬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한국 교회사는 미국 선교단체나 개교회의 당회록 등 단편적 자료를 갖고 기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특히 선교사들이 본국의 선교회에서 보낸 선교 보고서와 안부 편지 등이 유용한 1차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열악함 가운데서도 한국 교회 역사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성장의 과정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잘 보여 준다.

이번에 읽은 약간 두툼한 책 ‘ 한국 교회사 걷기’는 단지 교회 역사만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반 역사를 먼저 이야기하면서 그 가운데 선교사와 초창기 성도들의 활약상을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이를 통해서 역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묻는다. 왜 하필 구한말에 한반도에 복음이 들어왔을까? 물론 임진왜란 당시 왜군 무리에는 카톨릭 군종 신부가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복음 전파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구한말에 천주교 전파에 이어 개신교도 뒤를 이었다. 조선의 뒤늦은 개방에 이어 한반도는 열강의 각축 가운데 구원자를 대망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함 가운데 신사참배에 동참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한국 교회는 헌신과 희생의 모범을 실천하면서 그루터기 같은 역할을 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한국 교회 또한 성장을 거듭했다. 저자는 냉철하게 분석한다. 고난의 좁은 골짜기를 지날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다가도 평안하게 되면 그렇지 않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한국 교회 또한 이런 전철을 밝고 있지 않는지 성찰해야 함을 저자는 강조한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오히려 잃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한다. 양적인 성장에 안주하고 있지 않았는지, 저자 임경근이 길라잡이하는 한국 교회사라는 길을 겸손하게 걸어가며 성찰해 보는 것도 좋겠다.

********
의료 사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선교사들의 염려도 커져 갔다. 세브란스 병원 신축을 앞두고 선교사들 중에는 종합병원 같은 큰 기관들이 한반도 복음화에 이익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특히 모팻(마포삼열)을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은 ‘말씀의 전파와 선포’가 선교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일인데 병원을 짓는 것은 ‘세속적 수단’이니 ‘영적 수단’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염려하며 지적했다. (102p)

‘교육선교’는 ‘의료선교’와 더불어 한국 선교의 발판을 놓는 쌍두마차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한국은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이 기독교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학교를 세워 서구 문물을 가르치고 개화를 열망하는 한국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선교를 했다. 이런 방식은 조금 느리긴 해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10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