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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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탄식이 들려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와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의 입신과 영달보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진정한 어른을 우리 사회는 보유하고 있는가? 이런 발칙한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지난 여름 올림픽 때 에스엔에스에서는 김연경 보유국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역을 넓혀 우리의 의식 수준과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스승과 지도자를 우리는 갖고 있는가? 아니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

모두의 당돌한 질문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됨을 고백한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있는 사실이나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연구한 노학자, 이제는 암과 동행(?)하며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이어령 선생 이야기다. 그를 소개하는 글은 한 페이지로 부족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그의 책 중에 읽었던 것들이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더 많은 독서였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선생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좋은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에서 인간은 지성과 문명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늙었고 병들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에게 관록의 기자가 매주 찾아가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대답이 마치 칼과 창이 부딪히는 것처럼 날이 시퍼렇다. 이어령을 말한다. 평생 질문하는 삶을 살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국가나 사회, 학교, 종교 집단의 가르침을 별다른 의심없이 수용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탈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난함을 거부하고 왜 그러한가 질문하고 파고 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생각과 인식의 차이가 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질문받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가 있다. 권력이나 부를 선점하고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인류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감염병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전지구적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멈춰서서 질문해야 한다.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자연환경은 물론 인간 관계 또한 파괴한 과오에서 돌이켜야 한다. 과학 기술 개발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에 대해 사유하는 인문학에 공을 들여야 한다. 노학자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16편의 인터뷰는 강렬한 울림이 있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만만한 사람이 된다. 질문하지 않고 왜 그런지 따지지 않는 사람을 예로부터 지배층들은 선호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뒤늦게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내기 위해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는데 익숙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제 성장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다양성과 토론을 존중하는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어령 선생의 강의는 묵직하게 도전한다. 예전에 함석헌 선생이 일갈한 것처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경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바라기는 이어령 선생이 건강을 회복하여 마지막 수업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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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 배꼽을 만져보게. 몸의 중심에 있어. 그런데 비어 있는 중심이거든. 배꼽은 내가 타인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물이지. 지금은 막혀 있지만 과거엔 뚫려 있었지 않나. 타인의 몸과 내가 하나였다는 것,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같은 튜브를 타고 있었다는 것. 배꼽은 그 진실의 흔적이라네." p 39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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