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음모 : 반화
공도성 지음 / 이야기연구원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을 지배하던 무성한 참나무와 느티나무 잎사귀가 벌겋게 물들더니 추적거리는 가랑비와 서늘한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을 보며 나이 먹어감을 생각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를 부인하는-양분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잎사귀를 희생시키는-나무들처럼 나는 인생 석양길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왠지 옷깃을 세우고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할 것 같은 늦가을 오후에 작고 무거운 책 한 권을 만났다.

모두 6권으로 이뤄진 우화의 음모. 그 첫번째 책. 반화. 작은 크기의 양장본에 뺴곡하게 저자 공도성의 눈으로 읽어낸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각 나라와 작가의 우화가 소개된다. 안데르센과 그림형제, 이솝의 글들. 그리스, 독일, 메소포타미아, 미얀마와 이집트 등에서 구전되고 창작된 우화를 먼저 소개하고 각 장의 말미에 저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책 제목에 쓰인 반화(反話)란 단어가 생소해서 국어사전을 검색해 봤다. 나오지 않는다. 책 뒤에 부록으로 이야기 사전이 있다. 거기에서 저자는 반화를 이야기 원형의 기준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반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야기의 원형은 또 무엇인가? 저자는 기독교의 성경의 내용과 목적에 반하지 않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탄의 교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거나 알 것 같은 재미있는 우화가 사실은 사탄이 인간을 교묘히 속이기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논리의 비약이 심한 부분도 곧잘 있어서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와 설명의 부족을 느끼기도 했다. 구약 성경과 고대 근동의 문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를 거짓 종교라고 주장하는데 근거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저자는 사탄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우화를 이용했고,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 어느 것을 선택하든 하나님의 의와 구원에서 빗나가게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지만 수천년간 검증을 거쳐온 전통과 상식에 충돌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다 정합적인 설명이 뒷받침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4백개가 넘는 우화를 분석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해석해 내는 시도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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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완전하므로 불완전한 형상, 그러니까 거짓 형상을 의(義)나 이치(理致)보다 먼저 접하게 되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통해서 더 쉽게 자긍심을 키우게 된다. 이렇게 거짓 형상과 일체화가 된 후에 만나게 되는 의나 이치는 더 쉽게 거짓 형상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짓 형상에 속는 결과가 바로 사탄이 의도하는 것이다. (31p)

많은 신화에서는 인간의 영생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 자연적인 규칙과도 같은 것으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언급하고 구원을 통해서 인간의 완전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는 신화는 아마도 성경이 유일할 것이다. (3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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