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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리고픈 욕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픈 욕심을 언제나 있었던 듯 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아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픈 욕망 말이다. 그러나 머릿속에만 맴돌 뿐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연습도 없이 그림을 잘 그리고픈 욕망만 앞서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그림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혹은 말문이 막혔을 때의 기억들을 그림일기로 쓰고 싶어서였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데 마침 저자의 그림일기가 등장한다. 짤막한 문장 몇 개와 장난스러운 그림 하나하나가 일기가 되고 생생한 기억이 된다. 때로는 말보다 그림이 그때의 기억을, 감정을 잘 표현해주기도 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림으로 하는 말에 대한 욕심이 들었던 것일까. 유난히 그림에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겠다.

책을 읽는다고 해야 할까 본다고 해야 할까. 저자 ‘먼지’의 드로잉을 보는 재미가 있다. 수많은 병들, 다양한 사람들, 사람을 드로잉 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의 선을 따라 따라 그려봐도 좋은 연습이 될 것이었다.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도 문득 새로 산 수채 색연필을 꺼내 들고는 끄적 끄적 거려본다. 무에 커다란 도화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채울 생각을 버린다면 저자의 드로잉 공부만으로도 많은 습작이 나올 듯 했다. 그래서 버스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내 책상의 모니터도 그려본다.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 등의 단어가 아니라 오브젝트 드로잉, 라이프 드로잉, 로케이션 드로잉이라는 용어라서 조금 더 친근했던 건 아닐까.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을 지껄이듯 그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지껄여보라는 게 아니었을까. 연필이나 붓을 들고서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자신을 북돋는 듯한 저자의 말이 힘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나만의 스케치북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저자가 제시한 드로잉들을 보니 점들이 만들어낸 면과 다양한 색의 그 면만으로도 아름다운 드로잉이 된다. 이 부분을 책의 중간 부분에 있는데 스케치에 자신이 더욱 없다면 책의 순서 없이 면과 색부터 따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형태를 온전하게 잡는 것보다 색과 기하학적인 나만의 면으로 무늬를 만들어내고 나만의 스케치북 표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수많은 미술도구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스케치북을 다양하게 만드는 법까지 제시하면서 매우 미술학습적인 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저자의 의도가 결코 미술학습에 그 목표를 두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에 자신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그 어떤 것도 그림그리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찾는 영감을 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드로잉의 방법은 꼭 저자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거나 흥미가 좀 더 가는 분야를 공략해서 나만의 표현법을 만든다면 더 멋진 드로잉이 되지 않을까. 얼마나 닮게 그렸냐는 것이 우리의 작은 그림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얼마나 나만의 표현을 하고 있는지, 그림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일테고 저자도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최근 장미셀 오토니엘의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는 완벽한 공예품이 아니라서 버려지고 부러 파손되는 유리들을 모아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표현의 방법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우리의 드로잉이, 그림언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일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나의 표현의 욕구를 표출하고 매끈하진 않아도 내가 직접 내 기억을 표현한다면 그것으로 가장 큰 의미가 아니겠는다. 저자 ‘먼지’는 드로잉을 위주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며 다독이지만 사실 드로잉 뿐 아니라 어떻게든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다. 참으로 위로가 되는 저자의 메시지이다.

말했듯 이 책은 저자의 일기를 엿볼 수 있기도 하고 그의 여행기를 볼 수 있기도 하다. 덕분에 책을 보는 재미가 더했던 듯 하다. 조그마한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저자의 여행기와 일기라니 말이다. 일기 속의 저자의 캐릭터가 참 귀엽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멋진 캘리그라피가 되는 텍스트들도 멋지다. 저자가 이끌어주는대로 잘라붙이기도 하고 선으로만, 면으로만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연습은 정말 우리의 드로잉 실력을 높여줄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졸업앨범을 꺼낸다면, 수많은 맥주의 종류를 접한다면, 마트에 종류별로 한 골목 가득 쌓인 통조림의 종류를 본다면... 이걸 다 그려야 하나라는 부담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하나의 스케치북이라도 여러 방법과 소재를 시도한 2011년 11월~12월의 스케치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일기여도 좋고 스크랩이어도 좋고 과거를 기억하면서 앨범사진 중 하나여도 좋겠다. 일단 연필을 들어보는 거다.

나는 일년에 몇병 사지 않는 와인 맛을 구별하려고 병을 그리기도 했고 말로 하면 재미 없는 나의 황당한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려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정말이지 형편없는 그림이었지만 나중에 그 그림들이 나를 웃게 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은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를 위로하는 나의 또 다른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그림 그리고픈 욕망에 영감을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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