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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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타케 나나미'는 일상의 미스터리 경향의 작품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워낙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지라 미스터리계에서 무슨 무슨파라는 것이 한 둘이 아니지만, 사실 '일상의 미스터리'가 정확히 다른 작품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 읽은 그이의 소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가 종국에는 하나의 큰 미스터리로 귀결되는 형식의 연작 단편집인데, 그 독특한 구성이 인상에 남았다. 그 후, 국내에 소개된 '하무라'시리즈도 나쁘지 않아 단편을 꽤 잘 쓰는 작가라고 나름 평가하였다.

우연히 얻게 된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는 알고 보니 '하자키'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하자키 3부작은 가상의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한 장편 시리즈이고 그 첫 번째 작품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이 불과 얼마 전에 먼저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시리즈물은 가급적 첫 작품부터 읽는 것이 책읽기의 원칙이라 이 사정을 알고 부랴부랴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을 주문하여 먼저 읽었다. 두 작품을 연속해서 읽고 보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리즈의 연속성이 희박하였다. 전작에 등장하는 '고마지' 형사반장이 나오긴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 시리즈는 주인공은 '하자키'라는 가상의 도시인 듯 싶다.

작품 소개에 나오는 '일상의 미스터리'니 '코지 미스터리'니 하는 말에 너무 구애될 필요 없이 그냥 일반 미스터리를 대하듯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다. 엄연히 경찰이 개입하여 수사하는 살인사건이 '일상의 미스터리'는 아닐 것이고(경찰 입장에서는 일상이겠지만), 둔기에 머리를 얻어 맞고 피 흘린 시체며 해변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사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강력사건의 범주에 들기 충분할 정도이다. 게다가 사건의 주변인물들은 복잡한 가계도를 가진 부호 집안 출신이다. 이러한 외형만 보면 정통 미스터리의 겉옷을 걸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보다 좀 더 코지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다니던 회사는 도산하고, 기분전환으로 투숙한 호텔에서 큰 화재를 당하는가 하면, 수상한 신흥종교를 강권하는 지인을 피해 도망치듯 떠나 온 낯 선 바닷가에서는 파도에 떠밀려 온 사체를 발견한다. 우연히 일하게 된 헌 책방에서는 첫 날밤부터 도둑이 들고, 다음날에는 시체가 발견된다. 이렇게 갖은 불운과 구설에 연속으로 휘 말리는 '마코토'라는 캐릭터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귀엽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경이 로맨스 소설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헌 책방이기 때문에 자연히 로맨스 작품이나 작가들이 자주 등장하는 로맨틱한(?) 설정도 이러한 분위기를 더한다. 로맨스 소설이 이렇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르일줄이야 이 소설을 보며 처음 알았다.

미스터리 자체만 가지고 평가하면 시리즈 전작보다 미스터리의 깊이가 좀 덜하다. 중간쯤 읽으면 전체적인 사건내지는 이야기의 윤곽이 대충 그려진다. 무심하게 툭 건드리고 넘어가는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오싹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악의'를 능청스럽게 꺼집어 내는 작가의 장기는 여전하다. 다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은 여전히 뜬금 없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아직 싫증이 나지 않는다. 당분간 소개되는 작품은 계속 읽어야 할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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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 카툰 -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의 세계를 찾아가는 카툰 라이프
오차원 지음 / 펜타그램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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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 UFO, 사후세계와 심령현상, 초 고대 문명의 존재 등은 영원한 미스터리이다.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재 여부가 불명하기에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이 책은 심령현상에 대한 지은이의 체험담을 카툰으로 엮은 것이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등장하는 전형적인 귀신 이야기에서부터 유체이탈, 빙의, 악몽, 귀접 현상 등 실로 다양한 심령현상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기묘한 현상을 끊임없이 경험하였다는 지은이의 고백이 놀랍다.

지은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안(靈眼)이 발달하여 소위 신기(神氣)가 있었다고 한다. 모태 안에서 바깥을 내다본 사실이 기억 나는가 하면, 잠을 자다 깨어 보니 귀신이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반 사람들은 평생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미지의 세계와 맞닥뜨리곤 하였다. 불쑥불쑥 찾아 오는 고통스러운 심령체험 때문에 악화된 몸과 정신의 건강을 회복하고자 현재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조그만 도시에서 가족 외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은둔생활을 수 년째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지은이는 자기의 장기를 살려 본인이 체험한 실화를 카툰으로 표현하였다. 사실 여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지은이는 결코 이 카툰을 흥미 본위로 과장하여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함으로 심령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하다. 카툰 자체는 간결한 흑백 톤의 일상과 화려한 컬러 톤의 심령 세계가 대비되어 있다.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그림체도 독특하게 느껴진다.

이 카툰은 원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연재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댓 글이 많았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별로 영적이지 못하여 심령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지은이의 체험담들이 다른 세상의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지은이가 소개한 여러 가지 체험 중 '가위눌림'은 나도 드물지 않게 경험하곤 한 현상이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이 부분을 아주 유심히 보았다.

나는 가위눌림이 심령현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단지, 육체적으로 힘들 때나 특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때 꾸는 '악몽'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실, 자면서 가위를 눌리면 정신(또는 감각)은 말짱한데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고통(내지는 공포)가 말도 못하게 심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영적인 감수성이 무디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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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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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후 고향인 '스오'라는 작은 도시를 떠나 도쿄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 온 '요지'는 거의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그가 일해온 출판사는 경영부진으로 겉만 벼락부자인 사장이 운영하는 방송국 산하로 편입되면서 대대적인 인사폭풍이 몰아친다. 회사에 남아 뜻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거나 한직으로 쫓겨 가거나 기로에서 그는 사표를 던진다. 그 해 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여름에는 대학에 재직 중인 아내가 연구를 위해 1년을 기한으로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홀로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의 곁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딸 '미나코'와 함께 내려온 것이다.

고향집은 2세대가 함께 살수 있도록 개축되어 있었다. 외동아들인 요지의 귀향을 염두에 둔 어머니의 무언의 압력이었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 집에서 한 달을 채 지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쓸쓸해 할 할아버지를 생각했는지 미나코는 엄마와 함께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고 다니던 사립학교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까지 불사하며 요지를 따라 내려왔다.

오랜만에 머무는 고향에서 요지는 그 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고교 시절 야구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가 다닌 '슈코'는 지방 소도시에 하나쯤은 있는 소위 전통의 명문고였고 야구부는 졸업생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성원까지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성원만큼 야구 실력은 따라 주지를 않아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 조차 초반에 탈락하기 일쑤였다. 야구부의 에이스였던 요지가 3학년인 해 여름, 슈코는 기적과 같은 승부를 연속해서 펼치며 사상 처음으로 지역예선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한 경기만 더 승리하면 꿈에 그리던 '고시엔'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야구부에 닥친 불의의 사건으로 싸우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요지는 여지껏 살아온 고향 땅에 환멸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었고 그 후 줄곧 고향을 멀리하며 살았다.

서른 여덟의 남자에게 닥친 세상살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회에 진출하여 시작한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 졌지만 '앞 날'이라든지 '선택'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끊어지지 않는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더욱 무거워지고, 이제 연로해지기 시작하는 부모님까지 책임질 준비를 해야만 한다. 지금 요지에게도 이러한 인생의 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제 중년으로 진입하려는 한 남자의 일상과 내면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의 저변에 '야구'가 있다. '熱球'라고 씌어진 야구공과 함께 치고 던지고 달렸던 추억 속의 나날들이 요지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재생된다. 그리고,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의 사연들도 야구를 매개로 이어지고 미래를 기약하기도 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옛날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훈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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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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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결혼생활이 권태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연애시절 불꽃같은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사그라져 버리고, 연애관계는 생활관계로 접어들게 된다. 본시 생활이라는 것에는 갈등이 필요적으로 수반되는 법인데, 특히 그것이 고조되는 시기가 있다. 이 고비를 무난히 넘기면 부부로서 함께 해로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부부의 연이 끊어져 버린다. 그런데, 막상 배우자와 헤어진다는 것은 상당한 마음의 결단이 필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마저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차라리 배우자가 이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공동의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전직은 회사원, 기자, 방송작가, 시인으로 다양하지만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을 생산한다. 작품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각자 배경 묘사를 위한 정보 수집이나 취재작업, 스토리 구성작업, 전체적인 집필작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장을 다듬는 작업 등 자기의 장기분야를 하나씩 맡아 분업을 하는 식이다. 삼사십대 중반인 네 남자의 공동창작은 비교적 성공적인 궤도에 올라선 상태이지만, 다들 결혼생활에 다소간에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사내는 아내에게 꼼짝도 못하는 전형적인 공처가 스타일이다. 돈 관리를 비롯한 가정생활의 온갖 대소사가 모두 아내의 독단에 의해 정해질 만큼 아내의 기세에 눌려 살고 있는 처지이다. 물론 이혼도 아내의 거부로 절대 불가능한 상태이다. 두 번째 사내는 부부관계가 권태기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혼을 생각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아내보다 훨씬 어린 애인이 생겨 버렸다. 세 번째 사내는 오랜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어여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신혼생활을 구가중이지만 나이 어린 아내의 육탄공세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다. 네 번째 사내는 살림에 열심인 참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렇게 문제없는 가정생활이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막연하게 나마 아내의 부재를 바라는 네 명은 '마누라 죽이기'를 소재로 신작을 구상하면서 이번에는 작업 스타일을 바꾸어 각자 한 편씩 이야기를 만드는 옴니버스 형태를 시도하기로 한다. 평범한 스토리텔링 형식, 인터뷰 형식의 구성, 시나리오 스타일 등 다양한 형식에 각자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처지를 투영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소설로 구상한 이야기와 비슷한 일들이 실제로 발생하기 시작한다.

1976년 등단이후 500편이나 되는 작품을 생산하여 일본에서도 다작 작가로 유명한 '아카가와 지로'가 198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별다른 묘사없이 스토리텔링이 쭉 이어지므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가독성은 좋지만 밋밋하다는 느낌이다. 유머 소설에 있으면 금상첨화인 페이소스 같은 것도 별로 찾아볼 수 없고, 스토리 전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다만, 두 번째 사내의 애인이 이별을 선택하는 과정과 네 번째 사내의 아내가 손에 들어 온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 정도가 생각이 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네 사내의 아내들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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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탐나는 캠핑 3
허영만.송철웅 지음 / 가디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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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땅을 벗어나서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대개 남자들의 일탈은 술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서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허패'들의 바다 모험담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알코올이 끌어올린 허 화백의 호기를 때마침 곁에 있는 누군가가 거들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모험'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날마다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던, 하루종일 남의 이빨만 쳐다보고 일하든, 평생 남에게 월급만 받는 월급쟁이 인생을 살든 관계없이 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을 끝내고 끼리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는 시간이면 현실의 비루함은 잠시 잊고 남자들의 꿈과 로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간밤의 숙취가 가실 때면 어제의 호기도 로망도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허 화백을 비롯한 '허패'들이 참 대단하다는 것은 그들은 '행동파'라는 점이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남자들의 꿈, 특히 인생의 한 자락을 넘긴 중년 남자들의 로망을 말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뒷받침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경제력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정신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용기, 그리고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동료들의 존재 일 것이다.

이미 책으로도 나온 '캐나다 로키산맥 여행'이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과 달리 '허패'들의 이번 모험은 여행지가 국내이고 거의 1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이다.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한반도 바닷길을 무동력 배로 일주하기로 결의한 14명의 중년 남자들은 건조 후 15년이 지난 중고 요트를 마련하고 여섯 달에 걸쳐 수리를 끝낸 후 마침내, 2009년 6월에 경기도 전곡항에서 첫 항해의 닻을 올린다. 그리고 다음해 5월까지 총 12차례에 걸친 항해 끝에 독도를 찍고 삼척항에 이르는 대장정을 무사히 끝낸다.

눈부신 햇살아래 신비한 에머랄드 빛 바다위로 둥실 떠 있는 순백의 요트, 바다에 순응하지만 때로 거센 파도와 맞서는 뱃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로맨스...
요트여행에서 연상되는 이러한 로맨틱한 환상들은 실제 항해에서는 참을 수 없는 배 멀미의 고통과 깔따구 모기떼의 무자비한 공습 앞에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모두 12차례나 항해를 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그 깊이와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세계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그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해안과 섬들의 풍광을 여한 없이 가슴 속에 담았고 서로간에 더욱 깊어진 신뢰와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돛을 올리고 로프를 묶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이마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친 줄도 몰랐다" 는 허 화백의 술회가 인상적이었고, '허패'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그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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