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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평점 :
고교 졸업 후 고향인 '스오'라는 작은 도시를 떠나 도쿄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 온 '요지'는 거의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그가 일해온 출판사는 경영부진으로 겉만 벼락부자인 사장이 운영하는 방송국 산하로 편입되면서 대대적인 인사폭풍이 몰아친다. 회사에 남아 뜻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거나 한직으로 쫓겨 가거나 기로에서 그는 사표를 던진다. 그 해 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여름에는 대학에 재직 중인 아내가 연구를 위해 1년을 기한으로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홀로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의 곁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딸 '미나코'와 함께 내려온 것이다.
고향집은 2세대가 함께 살수 있도록 개축되어 있었다. 외동아들인 요지의 귀향을 염두에 둔 어머니의 무언의 압력이었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 집에서 한 달을 채 지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쓸쓸해 할 할아버지를 생각했는지 미나코는 엄마와 함께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고 다니던 사립학교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까지 불사하며 요지를 따라 내려왔다.
오랜만에 머무는 고향에서 요지는 그 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고교 시절 야구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가 다닌 '슈코'는 지방 소도시에 하나쯤은 있는 소위 전통의 명문고였고 야구부는 졸업생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성원까지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성원만큼 야구 실력은 따라 주지를 않아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 조차 초반에 탈락하기 일쑤였다. 야구부의 에이스였던 요지가 3학년인 해 여름, 슈코는 기적과 같은 승부를 연속해서 펼치며 사상 처음으로 지역예선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한 경기만 더 승리하면 꿈에 그리던 '고시엔'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야구부에 닥친 불의의 사건으로 싸우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요지는 여지껏 살아온 고향 땅에 환멸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었고 그 후 줄곧 고향을 멀리하며 살았다.
서른 여덟의 남자에게 닥친 세상살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회에 진출하여 시작한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 졌지만 '앞 날'이라든지 '선택'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끊어지지 않는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더욱 무거워지고, 이제 연로해지기 시작하는 부모님까지 책임질 준비를 해야만 한다. 지금 요지에게도 이러한 인생의 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제 중년으로 진입하려는 한 남자의 일상과 내면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의 저변에 '야구'가 있다. '熱球'라고 씌어진 야구공과 함께 치고 던지고 달렸던 추억 속의 나날들이 요지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재생된다. 그리고,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의 사연들도 야구를 매개로 이어지고 미래를 기약하기도 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옛날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훈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