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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ㅣ 탐나는 캠핑 3
허영만.송철웅 지음 / 가디언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땅을 벗어나서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대개 남자들의 일탈은 술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서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허패'들의 바다 모험담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알코올이 끌어올린 허 화백의 호기를 때마침 곁에 있는 누군가가 거들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모험'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날마다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던, 하루종일 남의 이빨만 쳐다보고 일하든, 평생 남에게 월급만 받는 월급쟁이 인생을 살든 관계없이 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을 끝내고 끼리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는 시간이면 현실의 비루함은 잠시 잊고 남자들의 꿈과 로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간밤의 숙취가 가실 때면 어제의 호기도 로망도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허 화백을 비롯한 '허패'들이 참 대단하다는 것은 그들은 '행동파'라는 점이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남자들의 꿈, 특히 인생의 한 자락을 넘긴 중년 남자들의 로망을 말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뒷받침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경제력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정신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용기, 그리고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동료들의 존재 일 것이다.
이미 책으로도 나온 '캐나다 로키산맥 여행'이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과 달리 '허패'들의 이번 모험은 여행지가 국내이고 거의 1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이다.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한반도 바닷길을 무동력 배로 일주하기로 결의한 14명의 중년 남자들은 건조 후 15년이 지난 중고 요트를 마련하고 여섯 달에 걸쳐 수리를 끝낸 후 마침내, 2009년 6월에 경기도 전곡항에서 첫 항해의 닻을 올린다. 그리고 다음해 5월까지 총 12차례에 걸친 항해 끝에 독도를 찍고 삼척항에 이르는 대장정을 무사히 끝낸다.
눈부신 햇살아래 신비한 에머랄드 빛 바다위로 둥실 떠 있는 순백의 요트, 바다에 순응하지만 때로 거센 파도와 맞서는 뱃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로맨스...
요트여행에서 연상되는 이러한 로맨틱한 환상들은 실제 항해에서는 참을 수 없는 배 멀미의 고통과 깔따구 모기떼의 무자비한 공습 앞에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모두 12차례나 항해를 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그 깊이와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세계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그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해안과 섬들의 풍광을 여한 없이 가슴 속에 담았고 서로간에 더욱 깊어진 신뢰와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돛을 올리고 로프를 묶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이마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친 줄도 몰랐다" 는 허 화백의 술회가 인상적이었고, '허패'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그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