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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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의 오리지널 제목은 '샤일록의 아이들'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그 이름이 그대로 고리대금업자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단어가 되었다.

대학 졸업후 유명 시중은행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작가 '이케이도 준'은
쾌적한 근무 환경에서 깔끔한 차림새로 스마트하게 업무를 처리를 하는 일류 은행원도
결국은 '돈'을 다루는 샤일록의 후예들이라 지칭하고 이들의 숨겨진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유명 시중은행 한 지점의 업무 마감시에 현금 100만엔이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한다.
정확함이 생명인 은행에서는 발생하여서는 안 되는 사고이다.
세세하게 업무를 다시 되짚어 보아도 찾을 수 없어 직원들의 소지품 검사까지 행해진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100만엔은 찾을 수 없었지만,
현금다발을 묶었던 종이 띠지가 한 여직원의 가방에서 발견된다.
당연히 그 여직원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향하지만,

그녀의 상사인 '니시키'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변호해 준다.
현금사고 발생이 지점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지점장은
간부 몇 명이 돈을 갹출하여 자금을 메꾸는 것으로 사고를 처리한다.
하지만, '니시키'는 현금띠지에서 지문을 체취하는 등 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한다.
마침내, 이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어 용의자와 만남이 이루어진 밤,
그는 실종된다.

 이 소설은 외양은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즉, 현금사고에서 발단하여 어쩌면 살인사건이 될 지도 모르는 실종사고에 얽힌 미스터리와 그 해결을
10장으로 구성하여 각 장별 각기 다른 화자에 의해 조금씩 진전되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렇게 각 연작들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을 취하여,
각기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사연이 각기 완결된 이야기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미스터리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분명 작가의 역량이 잘 발휘된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순수하게 본격 추리소설의 관점에서만 볼 때 이 작품의 미스터리적인 무게는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은행'이라는 공간에서 숨쉬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형상화에 있다.
작가는 '조직'이란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비애를 적나라하게 그려 내고 있다.

작가가 그려 낸 '샤일록의 아이들'은
조직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일하거나,
일찌감치 출세가도에서 탈락하여 조직의 뒷전을 전전한다.
영업실적 때문에 눈물 흘리고 좌절하고 심신이 황폐화 되어버리기도 하지만,
영업실적이 우수한 직원은 '스타' 대접을 받기도 한다.
선배의 잘못된 처사에 대들고 회사를 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전직과 전근을 소망한다.
하루하루 남루한 일상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당하면서도 정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작가는 한명 한명 등장인물의 이력과 성격, 그리고 그 내면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현대 직장인의 욕망과 좌절을 그려 내는데 성공하였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사회파' 또는 '일상의 미스터리'의 느낌이 강한 이 작품을 비켜가지
말 것을 추천한다. 그 정도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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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둔의 기억 1 - 제1부 저항군, 제1권 수색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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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둔의 기억' 시리즈의 1부가 출판되어 스페인어권 문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2006년에 마무리된 '이둔의 기억' 3부작은 스페인에서만 35만부가 팔리고 1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작가는 15살때 처음 '이둔'을 생각하였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나가
아름다운 또 하나의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냈다.
 
덴마크 실케보르에 사는 13세 소년 '잭'은 어느 날 방과후 집에 들어서자
정체 모를 악당에게 부모님이 이미 살해당한 것을 발견하는데 악당들은 잭까지 죽이려 한다.
위기의 순간 또 다른 두 남자가 나타나 잭을 구해주고 그들과 함께 잭은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세상 '림바드'로 가게되고, 그 곳에서 자신을 구해준 바니사르의 왕자 '알산'과
마법사 '샤일'에게서 '이둔' 이라는 곳의 이야기를 듣는다.
 
용과 유니콘, 인간과 요정들이 공존하는 세계인 '이둔'은 어느 날 재앙이 일어나
악의 신 '셉티모'를 숭배하는 흑마술사 '아슈란'과 그와 결탁한 '셰크'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알산과 샤일은 지구와 이둔의 중간계인 림바드에 머물며 저항군을 결성하고
잭은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알산과 함께 검술 훈련에 들어간다.
 
이 소설의 주요인물인 '잭' '키르타슈' '빅토리아'는 10대 소년 소녀들이다.
그래서, '용' '유니콘' '마법사' '늑대인간(하이브리드)' '신비한 종족' 등이 등장하는
정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얼개를 하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에서 닥치는 고민들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모습 등
성장소설의 미덕도 잘 갖추고 있다.
 
고집 만 부리던 잭이 책임감을 알게 되고, 약하기만 하던 빅토리아가 사랑 앞에서 용기를 내고,
차갑기만 한 키르타슈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인간적인 면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들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알아 나간다.
 
시리즈 1편은 시작일 뿐이다.
사랑과 증오, 우정과 배신이 묘하게 엇갈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잭과 빅토리아 그리고 키르타슈의 모험은 이제 겨우 시작점을 통과하였다.
시리즈 2편 3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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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파울라의 거침없는 하이힐
미키 칼텐슈타인 지음, 톰 맥킨거 그림, 서유리 옮김 / 새론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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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칼텐슈타인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겸 작가이다.
그녀는 2002년부터 오스트리아의 여성지 'Maxima'에 매달 '파울라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 칼럼이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이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으로 원제는 'Best of Paula' 이다.

독어권 작가,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의 글은 접하기 쉽지 않고,
이 책은 서구 현대 여성의 일상과 생각, 느낌을 경쾌한 필치로
유쾌 발랄하게 표현한 흥미로운 책일 것이라 기대하고 읽었다.
 
작은 모델 에이전시에서 비서로 일하는 파울라는 비록 현재는 실수투성이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그 누군가에 의해 꼭 성공하리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이상적인 운명의 남자를 만나기를 소망하지만 번번히 좌절하고,
멋진 옷을 소화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슬그머니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오고 마는
파티를 좋아하고 친구와의 수다떨기를 즐기는 그런 평범한 여성이다.

현대사회는 점점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각종 대중매체에는 좋은 직장 또는 전문직업에다 멋진 몸매와 미모까지 완벽한 여자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갖출 것 다 갖춘 이상적인 여성상을 선망한다.

이렇듯 완벽한 여성을 요구하고 선호하는 사회 트렌드 속에서
'프로 실수쟁이, 민망함의 여왕, 당황의 전문가' 파울라의 한바탕 좌충우돌이
많은 여성들에게 친근감과 통쾌함 그리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듯 하다.

이 책은 시종 정신없이 지껄이는 파울라의 수다로 점철되어 있다.
남자인 나로서는 잘 모르는 여성들의 관심사와 일상적인 화제를 곁눈질 할 수는 있었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파울라도... 그녀의 생각도...
남자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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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하나님 - 개정판
김승옥 지음 / 작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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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의 젊은 독자들이 '김승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소설을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들은 그를 60~70년대에 활약한 빼어난 단편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재학 중이던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 당선으로 등단하여
'환상수첩' '건'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역사(力士)' 등을 발표하였다.
'김승옥의 感受性은 世紀의 감수성이다'는 찬사를 받은 단편 '무진기행'을 세상에 내 놓은 것은
1964년 그의 나이 스물넷되던 해였고, 이듬해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른바 '419세대'이다.
이제는 형해화 되어버린 '419세대'는 해방후 일본식 교육이 아닌
미국식 민주주의와 한국어로 교육을 받은 첫번째 세대이고,
민주주의를 학교에서만 교육받은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한 세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필연적으로 이전 식민지 세대와는 단절된 감수성을 가졌다.      

김승옥의 소설은 419혁명의 사회적 열정을 문학적인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 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서 구사된 감각적인 문체와 문학적 감수성은
이전 세대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소설의 지평이었다.
 
그러나, 한국 문단에 소위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소설가 김승옥은
불과 5년 여의 짧은 작품활동 끝에 돌연 순수문학 보다는 영화계로 활동을 옮긴다. 
1967년 '안개'로 시작된 그의 영화 이력은 올드 영화팬에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의 화제작에 시나리오 또는 각색으로 참여하고
'감자'라는 작품에서는 직접 감독을 맡기도 한다.

70년대 내내 영화작업에 주력 하면서 '서울의 달빛 0장' 등을 간헐적으로 발표하던 그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1980년,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이라는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518직후 연재 14회 만에 그는 붓을 꺾고 사라졌다.

그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이 산문집은 1980년 절필 후 처음으로 펴낸 책이라고 한다.
총 4부 17편의 자전적 글이 수록된 이 산문집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편은 그의 신앙체험이 주가된 신앙간증류의 글이고
후편은 김현, 최하림, 김치수, 서정인, 염무웅 등 쟁쟁한 문필가를 배출한 동인지
'산문시대'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전반부 신앙간증은 생경하고, 글 속에 보이는 서구 우위의 세계관은 불편했다.
다만, 작가 김승옥이 어떠한 영적체험을 하였는지, 왜 문학을 버렸는지에 대한
작가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후반부의 글 중 '산문시대' 이야기는 '문학'에 눈이 반짝이던 고등학교 시절
어느 책에선가 처음 읽고는 가슴 두근거렸던 그 이야기를 수년이 흐른 후에 다시 읽었다.
감회가 새로왔다.

책을 덮으며, 작가에게 70년대는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하 시인이 감옥이 들어있는 동안,
작가와 그의 친구들은 술과 더불어 그 시대를 견디어 내었다.

수 많은 지식인을 절망에 빠뜨리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지식인들을 변절시킨 시대.
하지만, 그 시대와 독재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오늘도 화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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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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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빨간 사랑'을 읽고, 슈카와 미나토의 다른 작품 '꽃밥'을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부족한 느낌이 없진 않았으나, 특이한 소재를 능란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이 작품집이 작가의 데뷰작으로 소개되어 이를 먼저 읽었다.
 
읽은 후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새빨간 사랑'에서 파격적인 소재에 가려져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는 재미있는 단편집이다.
 
2002년 올요미모노 신인상 수상작인
'올빼미 사내'는 도시전설에 매혹된 한 사내가 스스로 전설을 창작하여 인터넷상에 퍼트리고
자신이 직접 전설의 주인공의 역할을 하다가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초반부는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게 무난한 전개를 하다가
결말부에 깔끔한 반전으로 임팩트를 주고 끝을 맺는다.

'어제의 공원'은 타입 립을 소재로 한다.
운명을 되돌리려는 인간 의지의 허망함이 잘 표현되어 있고
특히, 소설 마무리 부분에 발휘된 역량은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작가로 성장할 만한 단초를 보여 준다.

'아이스맨'은 신경증으로 요양중인 소년과 어린 소녀, 그리고 일본의 전통 요괴 '갓파'를 보여주고
돈을 버는 흥행꾼 남자가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이다.
신사 축제, 요괴 등 일본 특유의 소재를 비정상적인 변태심리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잘 버무려 놓았다.
 
'사자연'은 젊은 나이에 자살한 한 화가 지망생과 두 여자의 이야기인데
무섭도록 집요한 여자의 욕망, 비정상적인 정념 등 
'새빨간 사랑'에서 보았던 작풍과 유사하다.
화자의 나래이터에 따라 비정상, 정상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을 넘나드는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인다. 
 
'월석'은 타인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인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억은 각별한 것 같다.
하긴 연인원 6,4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동시대를 경험한 세대들의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약간의 미스터리 호러와 묶어
한편의 휴먼드라마로 형상화 하였다.

슈카와 미나토의 첫 작품집은
'파격의 신인이요 거대한 세피아 원석'이라는 작가 '이시다 이라'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반이상 채워준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그의 '꽃밥'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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