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김선우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김 선우님,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요즘도 가끔 설거지를 하다가 별이 눈에 들어오면 가슴이 쿵 내려앉으시나요? 세 종류의 수련을 잃어버린 빈 자리는 어떤 것으로 채우셨나요? 지나가다 들른 친구와 침묵이 자연스러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고 회사에 다니면서 시를 읽고 감상하는 법을 모두 잊었었답니다. 세상 현실이 너무도 각박해서 감성이 마르고, 간혹 틈이 나면 경제에 도움이 되는 재테크 서적이나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을 읽게 되거든요. 시는 제게 감정적인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우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정말 두근두근 가슴 뛰며 소중하게 아껴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단짝 친구에게 편지가 오면 바로 읽지 못하고 아껴 두었다가 자기 전에 펴 보는 그런 심정 아시지요? 선우님처럼 저도 삼십대인지라 괜히 더 반갑습니다. 내가 겪었던 일을 선우님도 겪었구나, 그 일에 대해 선우님은 이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이 시 구절은 정말 마음에 들어오네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선우님은 세상일에서 반쯤은 벗어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세상을 오래 살아온 것도 아닌데 아이부터 어른에게까지 참으로 의연한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는 그만큼 사랑을 많이 했기 때문이겠지요. 남녀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갓 태어난 조카에게, 세상을 떠난지 오래인 시인에게, 일본의 짧은 시인 하이쿠에게 선우님의 사랑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권태 속에 안정감 있게 고여 있는 영혼보다 사랑 속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영혼이 더 사랑스럽고, 남편이 아닌 사랑을 시작하는 주부에게 격려를 보내는 것은 제 정서에 맞지 않네요.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랑보다 안정에 타협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선우님이 ‘낮고 지나치게 진지한 목소리’로 들려주신 시와 시인의 삶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제 봄이 조금은 더 밝아지고 더 따뜻해졌습니다. 나는 아직 사랑할 수 있는 나이이고 세상은 아직 사랑할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BM 한국 보고서
IBM BCS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한국 경제에 관련된 책에서 이제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 나라는 한국전쟁에서 복구되면서부터 현대적인 의미의 기업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현재의 재벌이 창업되던 시절에는 도전과 시장 개척, 새로운 부문으로의 확장 등이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재벌 2세로 경영권이 넘어가고 재벌의 독과점에 대한 반발과 부익부 빈익빈 심화에 따른 규제 강화 때문에 이제는 거의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다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IBM의 컨설턴트들이 펴낸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 나라는 모방을 선호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상당히 높다고 진단한다. ‘미국과 일본은 부럽고 중국은 두렵다’는 소제목처럼 승자독식의 시대에 미국과 일본 같은 선도자가 되지 못하고, 재빠른 모방자, 혁신 전략이 없는 유지자로서도 중국을 비롯한 BRICs에게 조만간 추월당하게 생긴 상황에서는 혁신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책에서는 1990년대 이후로 20년간 정체되어 있는 우리 나라 경제의 현 실태와 그 이유를 규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설명한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혁신체계가 직면한 문제점이라고 꼽는 것은 창의적 혁신전략의 부재, 이익 성장을 위한 원천기술, 국제표준, 인재 등 무형자산의 창출과 활용 미흡, 서비스 산업의 낮은 혁신 수준, 벤처와 혁신클러스터라는 혁신 촉진 메커니즘의 부진, 정부의 정책 지원 미비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였다.

이들은 수출 중심 기업과 내수 중심 기업, 서비스 산업 등으로 나누어, 여러 부처와 단체에서 펴낸 많은 정보들을 토대로 저간의 상황을 짚어보고 정체의 이유를 다각적으로 설명한다.

읽다 보면 정부, 대학, 기업 모두 따로 고립되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참 막막하다. 한 부분이 변한다고 해도 사회가 바뀌기 어려운데, 하물며 정부 안에서도 각 부처에서 부서 이기주의와 지역 안배가 상충하니 혁신의 길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제약회사는 위험성이 높은 신약보다 제너릭을 추구하고, 대학은 많은 고학력 인재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보다는 성과를 얻기 좋은 응용 분야에 몰리며 연구 결과가 학문적인 수준에만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혁신을 향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IBM은 이를 위해 7가지 사항, 즉 혁신형 경제 도약을 위한 전략적 제언, 혁신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 제시, 혁신 성과에 대한 보상 메커니즘, 원천기술과 국제표준 확보를 위한 방안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논의 제시, 혁신인력 부족 해소를 위한 제언, 공공 정책의 기업 혁신 지원을 위한 제언, 국가 혁신체계의 개선 방향성 등을 제시한다. 이 사항들은 주로 혁신이 성공한 미국과 일본, 유럽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 나라의 상황과 비교 설명된다.

 

이 책은 경제와 경영, 혁신에 관한 기존의 책들과 비교할 때 좀더 넓은 범위에서 우리 나라를 객관적으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재벌에 대해 가지는 반감과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나라의 경쟁력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말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새삼 생각했다. 이제는 좁은 집안에서 나눠먹기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더 성장하는가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출처에서 발췌한 다양한 도표와 수식, 분석 자료들을 통해 세계 안에서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좀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한미 FTA가 타결되고 현재 EU와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추천사의 말처럼 앞으로의 10년 안에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야만 국가의 먼 장래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 대해 좀더 넓게 보고자 하는 사람들, 혁신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적용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등학생 엄마들의 첫번째 교과서 - 한국에서 아이를 잘 키운 엄마들의 숨은 노하우
이승민 지음 / 갤리온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아무런 걱정이나 사교육의 부담이 없이 학교 수업만 잘 따라가면 대학 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교육이라고 해 봐야 일반적인 아이들은 영어, 수학에 대해서만 단과반 학원을 다녔고, 좀 잘 사는 아이들은 과외를 받았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설계하는 기점은 고등학교 2학년때 이과와 문과를 선택할 때였고, 진학할 과와 대학을 고를 때까지만 잘 생각하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기 유학이니 대안 학교니, 특목고니 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뚜렷한 인생의 목표와 시간표를 정해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모양이다.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간 조카가 시험 기간에는 11까지 학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고등학교 3학년때에도 자율학습을 11까지 한 적이 없는데 요즘 아이들은 참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초등학생도 학원 여러 개는 기본이고, 사교육비가 가계수입의 20~30%가 넘는다고 하니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내후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나는 너무 준비가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 책 초등학생 엄마들의 첫번째 교과서는 굳이 사회의, 엄밀히 말하면 강남 엄마들의 교육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특별한 사교육을 하지 않고도 아이들을 국내외의 명문대에 보낸 10가지 사례를 1, ‘그 집 아이는 어떻게 성공했을까지극히 평범한 엄마들의 아주 특별한 교육해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소개된다. 부제는 그렇지만 성공한 아이를 둔 이 가족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으므로 이들에 맞추려고도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겠다.

2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준비된 부모가 돼라’, 3잘못된 초등교육 상식이 아이를 망친다’, 4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들’, 5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따로 있다에서는 주로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인 교류를 강조하면서 앞의 10가지 사례에서 배우는 특별한 노하우 등을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우선 10가지 사례들에서는 아이 교육에 비용은 들이지 않았지만 가족 전체가 많은 대화와 노력을 했고,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돈을 많이 내는 대가로 학원 강사들에게 의지하는 부모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모습이겠지만, 책에서도 티처 보이 teacher boy’라며 우려했던 그런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한번 해 볼만한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슬슬 아이의 공부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시기적절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떤 학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보다 어떤 엄마, 어떤 선생님, 어떤 친구가 되어줄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방한중인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 평양사무소 대표는 29 "북한의 식량 위기상황은 매우 심각하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드 마저리 대표는 이날 오후 서머셋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에 필요한 식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지만 이는 지원국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식량 공급은 매일 매일의 투쟁과 같다" "이는 지난해의 수해와 그로 인한 농경지 손실 그리고 WFP 등의 국제 구호단체를 통한 공여국의 지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표적 북한 식량 지원국이었던 한국과 중국마저 북핵 사태 등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면서 북한의 식량부족이 한층 심화되었으며, 이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임산부나 산모, 5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당장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곧 다가올 춘궁기에 북한 주민들의 식량 위기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드 마저리 대표는 특히 "이번 평양 방문에서 북측이 과거와는 달리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WFP의 북한 활동의 중요성을 북한 당국도 인정한 것이라 본다"며 북한 당국의 변화된 태도와 식량 지원의 절실함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WFP에게 전체 인구가 필요로 하는 식량과 자체 생산량 사이에 100만톤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측이 이같이 식량 부족을 인정하고 게다가 직접적 수치를 인용한 것은 처음으로, 이는 북한이 정말로 식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드 마저리 대표는 "WFP는 정치적 기관이 아닌 만큼 정치적 논쟁은 피하고 싶다"고 전제한 뒤 "인도적 지원은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한 식량 지원이 정치적 이슈에 좌우되고 있지만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은 정치를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지난해 약속한 식량 5만톤 지원이 정치적 이유로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2007 3 29 뉴시스 정치 뉴스에서 발췌

 

이 뉴스는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가>에 대한 현실 상황을 포괄적이고 긴박하게 보여준다. 이런 기아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상황, 해결되지 않을 때의 예상 결과, 주변국과 구호 단체의 역할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기사를 예사로이 읽어 넘기고 이들의 어려움을 지극히 외면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장 지글러 교수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 일을 하면서, 강대국의 관심 밖에서 소외받고 있는 많은 국가의 기아 인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아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 실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 등에 대해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얼핏 보기로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FAQ (frequently asked question)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춰 보면 기아의 처참한 내용에 대해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설명이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감정적으로 대한다면야 뜨겁게 끓었다가 뜨겁게 식는 반응만을 유발할 수 있겠지만, 여러 나라의 역사와 지리, 정치,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등을 풍부하게 실어 놓아서 우리가 기아에 대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머리로 이해한 지식들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행동으로 이루어내도록 촉구할 것이다.

웰빙과 로하스가 트렌드인 요즘 같은 시대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그들의 현실은 남의 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임을 새삼 깨닫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월드비전: www.worldvision.or.kr
굿네이버스: www.goodneighbors.org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사면 띠지와 표지, 속날개를 쓱 훑어보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요즘은 워낙 띠지가 멋지게 나오기 때문에, 무엇을 강조하며 홍보하고자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띠지는 마치 물건의 사용 설명서처럼 ‘본문의 글자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거나 세로로 된 경우, 당황하지 말고 책을 돌리거나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읽으십시오. 페이지 가운데 일부 하얗게 비어 있거나, 글자가 검은 상자로 덮여 내용을 알아볼 수 없거나, 글자가 희미해지는 곳이 있으며, 종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파본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싣고 있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거추장스러워 하며 휙 벗겨버린 독자라면, 책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마주쳤을 때 살짝 당황했을 법도 하다.

이처럼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과 종이에까지 신경을 쓴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발하고 매혹적인 삼차원 메타판타지’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메르세드와 메르세드 드 파펠, 꼬마 메르세드가 나오는가 하면 감시자로서의 토성, 이에 대항하는 EMF 단원들, 불로 몸을 지지거나 벌의 침을 쏘이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다가 연금술사, 종이접기 전문가인 오리가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페데리코 데 라 페가 그렇게 대항하고자 했던 대상은 바로 토성이다. 처음에는 진짜 하늘에 떠 있는 토성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이 책의 작가인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였다는 설정은,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든 이는 모두 작가인 토성의 의지이고 행동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일단 작가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생명력으로 각자 움직인다는 사실, 반역을 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일견 흥미롭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으로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이 소속된 에이전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향력이 검증되었다는 뜻인데, 형식에 급급해서 읽느라 그 느낌과 감흥을 충분히 느끼지 못 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나처럼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책 소개 페이지를 먼저 읽고 책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