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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사면 띠지와 표지, 속날개를 쓱 훑어보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요즘은 워낙 띠지가 멋지게 나오기 때문에, 무엇을 강조하며 홍보하고자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띠지는 마치 물건의 사용 설명서처럼 ‘본문의 글자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거나 세로로 된 경우, 당황하지 말고 책을 돌리거나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읽으십시오. 페이지 가운데 일부 하얗게 비어 있거나, 글자가 검은 상자로 덮여 내용을 알아볼 수 없거나, 글자가 희미해지는 곳이 있으며, 종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파본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싣고 있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거추장스러워 하며 휙 벗겨버린 독자라면, 책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마주쳤을 때 살짝 당황했을 법도 하다.
이처럼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과 종이에까지 신경을 쓴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발하고 매혹적인 삼차원 메타판타지’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메르세드와 메르세드 드 파펠, 꼬마 메르세드가 나오는가 하면 감시자로서의 토성, 이에 대항하는 EMF 단원들, 불로 몸을 지지거나 벌의 침을 쏘이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다가 연금술사, 종이접기 전문가인 오리가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페데리코 데 라 페가 그렇게 대항하고자 했던 대상은 바로 토성이다. 처음에는 진짜 하늘에 떠 있는 토성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이 책의 작가인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였다는 설정은,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든 이는 모두 작가인 토성의 의지이고 행동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일단 작가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생명력으로 각자 움직인다는 사실, 반역을 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일견 흥미롭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으로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이 소속된 에이전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향력이 검증되었다는 뜻인데, 형식에 급급해서 읽느라 그 느낌과 감흥을 충분히 느끼지 못 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나처럼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책 소개 페이지를 먼저 읽고 책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