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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이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ㅣ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1
바바라 파크 지음, 김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6년 5월
평점 :
알츠하이머가 병으로 인정받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전까지는 늙으면 정신이 흐려져서 망령을 부린다는 뜻의 '노망'이라는 말이 이 증상에 주로 쓰였고, 이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행동은 망령 부리는 것, 괜히 트집잡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노망이 심하게 들면 뒷방에다 모신다든지 아예 전문 병원에 모신다든지 했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노망들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거짓말을 하셨다.
뇌 의학이 발달하면서 뇌의 신경 세포에 독성 물질이 축적되기 때문에 기억을 잃어가는 질환이라고 알츠하이머 (치매)가 정의되면서 이제는 이들을 환자로서 바라보게 되었고, 치료제와 예방 백신도 연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인공인 제이크 문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누구보다도 엄격했고 동시에 자상했던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어제까지 할 수 있던 일도 오늘은 할 수 없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제이크는 많이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한다. 한편으로는 방과 후에 개인 시간을 쓸 수 없고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면서 화도 내고 반항도 한다. 그렇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엄마 대신 할아버지를 돌보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제이크였다.
서로 생활이 힘들다 보니 짜증만 늘어가던 한 때 할아버지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고, 건강과 행복은 잃은 후에야 알 수 있듯이, 할아버지의 부재는 할아버지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졸업식 때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할아버지를 구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박수를 치게 된다. 물론 할아버지의 증상은 아직은 가볍고, 제이크는 또래보다 어른스럽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제이크의 저런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솔직히 나는 제이크처럼 할 자신이 없다.
이 책은 제이크의 시선에서 사춘기 소년의 심정과 주변을 보는 관점을 잘 묘사하고 있다. 눈물을 찔끔 흘리도록 감정이 과잉된 것도 아니고 아주 차분하다. 표지에서 할아버지의 발을 아이의 발이 다가가 만지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많아질 알츠하이머 환자들에 대해 좀더 넓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