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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은색과 검은색의 흑백사진,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제목으로 ‘라이프’지에 실려서 그를 또다시 유명하게 만들었던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사진을 표지로 쓴 책을 펼치면 마치 셔터가 닫힌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검은색 속지가 맞이한다.
로버트 카파는 1936년부터 1954년까지 18년 동안 스페인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전쟁, 인도차이나전까지 다섯 차례의 전쟁을 취재한 포토저널리스트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1942년부터 1945년에 걸친 2차 세계대전 종군기이다. 전투에 투입될 때의 긴장감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사진들,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사랑 이야기, 세계대전 연합국의 적국인 헝가리 출신이라는 데서 나오는 어려움이 진솔하면서도 유머스럽게 배어 있다.
전쟁 사진을 주로 찍는 종군기자라고 해서 어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랴. 책에서도 두려움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지만 안전한 후방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장, 그것도 가장 긴박감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전방을 골라서 출정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사진 철학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해안에 오르지도 않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취재한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그는 상륙용 주정에 올라 병사들과 같이 해안에 상륙했고,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를 처음 세상에 알린 스페인내전의 ‘어느 인민전사파 병사의 죽음’에서는 누구보다도 적진에 가까이서 사진을 찍었다.
검은 테두리에 둘려 마치 검은 액자에 넣어둔 듯한 흑백 사진은 흑과 백의 단순함 가운데에서 전쟁과 평화의 대비가 더욱 극명해졌고 더욱 엄숙하게 빛이 났다. 독일군에게서 해방되어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독일군에 협조하여 머리를 삭발당한 여자들도 사진 속에 남아 있다.
그의 전쟁 사진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무의미함을 알리는 데에 얼마나 소용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바람과는 달리 연합군 측의 선전과 근황 보고에만 쓰였을 수도 있다. 로버트 카파의 소임은 사진과 기사를 송고하는 데에서 끝났기 때문에 이후의 사진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의 권한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매그넘’을 창설하여 사진가의 지위를 높인 것에서 사진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알 수 있다.
책에 실린 그의 사진에서는 촬영 구도라든가 촬영 기법 등의 정보는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피사체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로버트 카파를 이해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