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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했어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아버지의 학대로 거의 듣지 못하게 된 소녀 조이와 사냥꾼에게 어미를 잃고 사람의 손에서 자라난 침팬지 수카리는 모두 상실감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소수이다. 우연한 기회로 조이가 수카리의 보호자 찰리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세상의 확장과 좌절,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개척을 조이의 시점에서 그린 작품이다.
장애란 어떤 느낌일지, 아무런 장애가 없는 나는 그들의 어려움과 답답함을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청각 장애보다는 시각 장애가 가장 힘들 거라는 정도만 생각했을 뿐, 청각 장애인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주인공 조이의 말처럼 소리를 끄고 TV를 본다거나 물 속에 들어가면 그들의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이가 농아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 수화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들처럼,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을 때에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통해서나마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이는 듣지 못하는 것만 빼고는 정상인과 다르지 않다. 정상 학교에 다니면서 정상인처럼 보이고자 하는 엄마의 입장과 정상인들 사이에서 희생되고 소외감을 느끼는 조이의 입장, 그리고 배우기 위해서는 수화가 필요하다며 엄마를 설득하는 찰리 할아버지의 입장에 모두 서서 무엇이 조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조이의 선택과 진로를 보면서 우리 나라도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사회의 문화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또한 수화를 하는 침팬지 수카리의 이야기는 동물들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사실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동물 실험은 필요악이라는 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실험 동물의 입장에 대해서도 처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이나 다름없는 수카리가 겪었을 고통과 슬픔, 분노에 대해 미안하다.
내가 처음 읽은 양철북 출판사의 책은 자폐증이 있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였고, 그 다음은 보스니아 내전에 휘말려 고통을 겪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나무 소녀>였다. 세번째는 쓸쓸한 중년이지만 희망을 찾아나가는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였고, 네번째가 바로 이 책,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 사람 같은 침팬지 수카리가 주인공인 <네가 있어 행복했어>이다. 그러고 보면 <허수아비의 여름휴가>를 빼고는 힘없는 소수가 주인공이며 그들이 어려움을 헤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아주 거칠게 단순화시킬 수 있겠다.
책을 읽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지만, 책을 통한 인식의 확장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는 고통받는 소수의 입장인 조이와 수카리 모두가 되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