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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창 언어 ㅣ 인류의 작은 역사 5
실비 보시에 글, 메 앙젤리 그림, 선선 옮김, 김주원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평점 :
요즘 영어 공용화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20여년 전만 해도 영어는 중학교에 올라가야 배울 수 있는 언어였고, 고등학교에 가면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과목에 영어가 들어가고, 내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리킨다고 한다. 물론 어린이집에서는 벌써 알파벳과 영어 과목이 당연하게 들어 있고, 영어 유치원 같은 경우는 적어도 2년은 다녀야 하고 일반 유치원에 비해 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초등학생들의 단기 어학 연수는 아주 보편화되어 있다.
대통령 당선자는 영어 공용화 이야기를 꺼냈다가, 영어 과목부터 영어로 강의하라고 조금 축소했고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 몰라도 현실화될 예정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인류의 작은 역사' 시리즈의 <내일을 여는 창, 언어>를 읽어 보자. 언어, 즉 말과 글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말과 글 덕분에 문화가 전승될 수 있었고,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하여 현재와 미래의 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로 나누는 근거가 바로 문헌이라는 것은 언어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프랑스 작가인 실비 보시에 님은 인간의 언어, 세계의 언어, 언어의 수많은 얼굴이라는 세 항목 안에서 언어의 효용, 세계의 언어 현황, 언어의 역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 다양한 민족의 역사와 사례들을 많이 싣고 있고, 과학 실험의 결과도 실려 있는데, 딱딱한 이론적인 언어 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설명되어 있으므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언어는 종교 의식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므로, 많은 종교 이야기와도 떼어놓을 수 없다.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언어들 자체의 역사는 한 사람의 노력 때문에 다시 생명력을 얻게 된 헤브라이 어와 지금도 끊임없이 소멸하고 있는 작은 부족들의 언어 등 부침이 심하다. 도시화와 세계화 때문에 힘을 가진 언어들이 세계를 통일하는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책 후반부에 맨 위에서 이야기한 영어 공용화 문제가 잠깐 등장한다. 저자는 그에 대한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 않지만, 그간의 어조와 역사적 사실들을 보면 언어로 이어내려오는 공동체의 고유성과 문화를 지키는 것을 지지함을 알 수 있다.
맨 뒤에는 김경원 님의 '한국어가 걸어온 길' 꼭지가 실려 있어서 우리말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말은 세계에서 7000만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 다른 언어들에 대해 많이 알수록 과학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우리말의 전통과 향기와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다양한 언어들이 모여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는 멋진 세상을 기대하게 된다.
판화 스타일의 풍부한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고, 큼직한 판형에 배치된 글들이 시원시원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나이가 많은 부모님은 생계에 필요한 정도로만 영어를 하고 집에서는 우리말을 쓴다. 반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영어를 더 빨리 배우고, 집에서도 굳이 영어를 쓰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고, 한 가정 안에서 부모와 아이들 간에 대화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들었다.
영어 공용화가 만약 이루어진다고 하면,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위하여 수많은 학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수직 분할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가까운 과거에도 일본이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문화통치를 하며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 짧은 동안 우리 문화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일본을 무조건 수용하는 학풍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언어는 사고까지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짐을 알 수 있겠다.
'인류의 작은 역사' 시리즈는 1권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2권 <가장 오래된 약속, 종교>, 3권 <생각을 담는 그릇, 문자>, 4권 <보이지 않는 질서, 시간>, 5권 <내일을 여는 창,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와 함께 <생각을 담는 그릇, 문자>를 함께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