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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 ㅣ 고정관념 Q 13
오드 시뇰 지음, 정재곤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펴내는 ‘고정관념 Q’ 시리즈는, 프랑스의 르 카발리에 블뢰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고정관념 시리즈 중에서 국내 독서계에 적합한 흥미로운 주제들을 엄선해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는 찾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지식 검색’, ‘당신의 상식을 뒤흔드는 깐깐하고 균형잡힌 지식 문답, 딱딱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즐거운 지식을 만난다’ 라는 설명답게 주제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들을 질문으로 던지고, 그에 대해 깊이 있는 해답을 주고 있다.
나는 이번에 ‘유대인 –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가’,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 ‘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이라는 세 권의 고정관념 Q 시리즈를 읽었다.
‘유대인’에서는 유대인의 역사, 유대인의 특성과 전통, 유대인의 사회와 경제,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역사, 팔레스타인의 사회와 일상 생활, 정치생활과 평화협상, ‘이슬람’에서는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 이슬람의 문화와 사회, 이슬람과 현대의 세계라는 항목으로 20가지 정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책에서 다루기에는 꽤 방대한 질문들이며, 내용에 따라서는 수천년을 아우르는 깊이도 보인다.
우선 ‘유대인 -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가’ 편을 보자.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예수를 죽게 한 민족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고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아 왔다. 선민의식은 그런 박해의 원인인 동시에 박해를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박해에 의해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면서 세계 곳곳에 분산(디아스포라)되고, 아슈케나지, 세파르디, 사브라 유대인으로 나뉜다. 이들은 그들이 정착한 곳에 동화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동화되었든 그렇지 않든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오해들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피해를 받아 왔음을 강조하고 있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하는 책 내용에서 여전히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느꼈다고 하면 나는 반유대주의자인 것일까..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 편에서는 20세기 초중반 영국의 신탁통치를 거치고 이스라엘이 건국하는 과정에서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하고, 팔레스타인 영토로 할당된 국토가 이스라엘에 의해 잠식되는 과정, 이들이 이스라엘과 맞서는 과정이 주로 소개된다.
강대국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생존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100년 전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한지 모르겠다. 이들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보다는 이스라엘 및 서방세계에 대한 테러로 기억되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에서는 이슬람이 그런 테러의 정신적 배후라는 참으로 강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한다.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갈라져나왔으니 이들은 형제와도 같다.
이슬람의 교주인 무함마드의 일생에서부터 시아파와 카와리지파, 순니파로 갈라지게 된 계기, 아랍계의 각 나라들이 성격을 달리 하게 된 계기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슬람은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아랍에만 존재하는 종교가 아니라 세계 인구 중 15억이 믿고 있으며, 그 중 아랍인은 3억밖에 되지 않는다.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꾸란을 든 무슬림 전사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강조되었고, 여러 교파들 사이에서 가장 강성인 지하드(성전聖戰)로만 거론되기 일쑤이다. 어떤 모습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수많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슬람은 우리에게 너무 전쟁과 불관용의 모습으로만 알려진 것이 아쉽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접점이 있다. 유대인들이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박해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박해는 기독교도들에 의한 것이었지, 무슬림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유대교의 성지가 예루살렘에 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에 자리를 잡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건국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자 이슬람과의 대치라는 종교적 색채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어떤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맹목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그에 어긋났을 때 가차없는 처벌로 선민조차 쓸어버리는 무서운 하나님이었다. 노아의 가족만을 남기고 온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같이 사랑과 온유함을 갖추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구약을 믿는다. 이들이 세운 이스라엘은 구약의 하나님처럼 맹목적인 순종과 가차없는 처벌로 팔레스타인을 대하고 있다. 아랍의 무슬림들이 총단결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종교전이 아니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도 종교 전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힘의 우열에 따른 적자생존만이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범법 행위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숨통을 조이는 것을 막을 힘이 우리에게는 없으나, 우리는 그런 불의를 묵인하지 말고 정의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실을 처음 배우는 것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더 어려움을 새삼 깨달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좋은 책들이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