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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ㅣ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은 꽤 들어보았는데, 그의 책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가 쓴 첫 작품은 아닐지라도 처음 읽게 되는 작품으로 그 작가에 대한 느낌을 규정한다고 하면, 이 책으로 요시다 슈이치를 알게 되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후쿠오카 시와 사가 시를 잇는 총 길이 48킬로미터의 국도인 263번 도로는, 세후리 산지의 미쓰세 고개를 타넘으며 남북으로 뻗어 있다. 가까이에 고속 나가사키 자동차도로가 개통되면서 이 도로는 잊혀지게 되는데, 2002년 1월 6일, 나가사키 교외에 사는 젊은 토목공이 후쿠오카 시내에 살던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를 목 졸라 죽이고 시체를 유기한 용의자로 나가사키 현 경찰에 체포되면서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난다.
그녀는 누구를 만나고 싶어 했나, 그는 누구를 만나고 싶어 했나, 그녀는 누구를 만났는가, 그는 누구를 만났는가, 내가 만난 악인이라는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미쓰세 도로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다가간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지만, 이미 어떻게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지의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이 든다. 곧 죽을 사람은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지에 대해 신경쓰게 되고, 죽일 사람은 어떻게 해서 죽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신경쓰게 되고, 각 사람의 주변인들은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두 주의깊게 살펴보게 된다.
만남 사이트를 통해, 또는 술집에서 부킹을 통해 이성을 만나는 이들의 부박함,. 사랑이 더이상 존재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삶을 살던 여자와, 어려서부터 애정이 결핍되었으므로 사랑을 존재의 이유로 삼았고 번번이 상처받은 남자가 부딪쳐서 결국 서로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미쓰세 고개에서 죽은 것은 여자였으나 남자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표지에 쓰여진 악인이라는 한자는, 겉으로는 아름다웠으나 속이 그렇지 못했던 이들을 암시하는 것처럼 알록달록 예쁘다. 여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토목공 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까지 몰고 간 수많은 사람들, 마음보다는 육체를 중시해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만 중요한 이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들 모두가 악인이 아닐까. 사람을 죽였다는 무서운 일을 저지른 토목공에게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를 지렛대로 사용한 그 많은 악인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시다 슈이치, 언젠가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