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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참 일본 소설이 많이 들어왔고 지금도 들어오고 있는 중에, 요즘은 ‘위화, 쑤퉁 등을 비롯해 류헝, 모옌, 차오원쉬안 등 여러 중국 소설가들의 작품이 들어온 조용한 중류(中流) 열풍’이라는 기사가 뜰 정도로 중국 소설도 꽤 눈에 띈다. 위화의 작품들 중에서 예전에 읽은 <허삼관 매혈기>는 생계를 위해 피를 파는 허삼관의 이야기였다. 웃어넘길 수 없는 삶의 신산함이 가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인들이 아주 길하게 생각한다는 빨간색 표지를 넘겨 보니 저자인 위화의 사진과 이력이 실려 있다. 아주 수더분하게 생기셨다.
서문은 이번 한국어 개정판 서문, 1996년에 처음 펴낸 한국어판 서문, 1993년의 저자 서문 등 서문만 해도 세 편이 실려 있다. 각 편마다 시기와 대상이 달라서 서문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이 책의 원제는 활착(活着)이라고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활착은 농업 용어로서, 옮겨 심거나 접목한 식물이 서로 붙거나 뿌리를 내려서 삶,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사람의 인생도 식물의 한살이와 같아서 뿌리를 내리기까지가 참 어렵고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와 열매도 튼튼하게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활착은 한 사람의 역사에서 참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인생>은 액자소설과 같은 형식이다. 시골을 돌아다니며 민요를 수집하는 ‘팔자 편한’ 직업을 가지게 된 나는 시골 길을 가다가, 밭갈이에 꾀를 피우는 늙은 소를 나무라던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난다. 소를 잠깐 쉬게 하면서 나무 그늘에 함께 앉은 나는 푸구이의 인생에 대한 길고 상세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나라만큼이나 격변이 많았던 중국의 근현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푸구이 가족의 모습은, 개인의 힘없음과 더불어 이념의 폭력, 가족의 소중함을 누누히 이야기한다. 굶어죽을지라도 가족이 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업고 갔던 펑샤를 다시 데리고 오는 모습,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겨우 얻어온 쌀을 한줌 남에게 주고서 아까워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딸을 출가시키고 나서 딸의 소식을 듣기 위해 성안에 간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 아이를 혼내고서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버지의 모습 등은 참 사실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푸구이, 자전, 펑샤, 유칭, 얼시, 쿠건 등의 낯선 이름들은 배경이 중국임을 끊임없이 환기시켰지만, 이들의 모습과 생활, 문화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 정말 비슷해서 그만큼 친숙했다.
아흔이 넘은 우리 할머니가 일제 시대와 전쟁을 나던 때의 말씀을 하시던 중에, 일찍 남편을 여의고 많은 아이들을 키우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보이신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많은 고생과 시련이 탈색되면서, 잘 견뎌온 당신이 대견스럽기도 한 마음에 한 줄기 눈물로 배어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도 위화의 <인생>을 읽으면서 푸구이 노인의 끝없는 고난과 그 중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배려에 슬며시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내 눈물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들의 삶에 빠져들게 만든 위화의 문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으나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은 푸구이의 모습은, 소설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르겠으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2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인생을 죽 지켜본 듯한 기분좋은 피곤함으로 책을 덮었다.